세포는 발달 중인 배아이든, 전이성 암이든,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전통적으로 과학자들은 세포가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이 유전자 돌연변이나 유전자 발현 변화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최근 예일대학교 연구진이 밝힌 연구결과에 따르면, 세포는 유전자 변이 없이도 집단적 이동을 통해 빠르게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연구는 진화의 이해를 확장할 뿐만 아니라 암 치료 전략에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세포는 유전자 없이도 적응할 수 있다
세포의 적응은 기존에는 유전자 변이에 의존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는 항생제 내성을 획득하기 위해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암세포도 화학요법에 적응하기 위해 유전자 변화를 겪는다. 하지만 이러한 적응은 세대가 거듭되면서 서서히 진행된다. 예일대 연구진은 새로운 실험을 통해 유전자 변이 없이도 단 2~3세대 만에 세포가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이는 유전자 조절이 아닌, 세포 집단의 이동 방식이 적응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발견이다.
환경이 다르면 적응 방식도 달라진다
연구진은 유전적으로 동일한 대장균을 서로 다른 환경에 배치하고 이동 패턴을 분석했다. 첫 번째 환경은 장애물이 없는 유체 환경으로, 연구진은 이를 ‘직선 고속도로’에 비유했다. 이 환경에서는 직선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박테리아가 선두를 차지하고, 자주 방향을 바꾸는 박테리아는 뒤처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체 환경에서는 직선 이동 능력이 뛰어난 박테리아가 점점 우세해졌다.

반면, 두 번째 환경은 다공성 환경으로, 연구진은 이를 ‘거친 산길’에 비유했다. 장애물이 많아 방향 전환이 중요한 환경에서는 방향을 자주 바꾸는 박테리아가 살아남았고, 직선 이동을 선호하는 박테리아는 점차 줄어들었다. 즉, 환경 조건이 달라짐에 따라 개체군 내에서 특정 이동 방식이 선택된 것이다.
예일대 연구진은 이를 자동차 운전에 빗대어 설명했다. “직선 이동이 뛰어난 박테리아는 고속도로에서 빠르게 질주하는 포르쉐 운전자와 같고, 방향 전환을 자주 하는 박테리아는 험로를 달리는 지프 운전자와 같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즉, 어떤 환경에서는 포르쉐가 유리하고, 다른 환경에서는 지프가 유리한 것처럼, 세포도 이동 방식에 따라 적응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유전자 없이도 빠르게 적응하는 세포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적응이 유전자 변이나 유전자 발현 변화 없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연구진은 실험을 통해 이동 방식이 달라진 박테리아들의 유전자 발현을 조사했지만, 유전자 조절이 변화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는 개체군이 단순히 이동을 통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연구의 공동 저자인 예일대 포티오스 아브기디스(Fotios Avgidis) 박사는 “집단 이동을 통한 비유전적 적응은 개체군이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물학적 문제에 동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즉, 전통적인 유전자 조절 방식이 한 번에 한두 가지 특성만을 변화시키는 데 반해, 집단 이동 방식은 여러 특성을 동시에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연성 덕분에 세포 집단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연구 결과는 암 치료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암세포가 치료에 저항성을 갖는 방식은 주로 유전자 돌연변이 때문이라고 여겨져 왔지만, 이번 연구는 암세포도 유전자 변화 없이 이동만으로 치료 저항성을 획득할 가능성이 있다.
예일대 티에리 에모네(Thierry Emonet) 교수는 “이 연구는 미생물뿐만 아니라, 원핵생물과 진핵생물 모두에서 이러한 메커니즘이 작용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뉴욕 플랫아이언 연구소의 헨리 매팅리(Henry Mattingly) 박사는 “우리의 연구는 세포 집단이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비유전적 방법이 존재함을 보여준다”며, “집단 이동이 유전자 변화 없이도 선택 압력을 생성하고, 개체군의 유연성을 증가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세포가 반드시 유전자 변화를 거치지 않아도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첫 사례이다. 이동 방식 자체가 적응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으며, 이는 박테리아뿐만 아니라 암세포와 같은 다양한 생물학적 시스템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손동민 기자/ hello@science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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