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실제로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철학적 분석은 “과거·현재·미래가 모두 이미 존재한다”는 유명한 시공간 개념이 언어적 혼동 위에 세워졌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물리학이 ‘존재하는 것’과 ‘일어나는 것’을 섞어 쓰면서 시공간의 본질을 오히려 흐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시공간은 정말 ‘존재’하는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중심에는 공간과 시간이 하나로 얽힌 ‘시공간’ 개념이 있다. 과학에서는 흔히 이를 현실의 바탕이 되는 ‘직물’처럼 설명한다. 어떤 설명에서는 과거·현재·미래가 모두 한꺼번에 담긴 거대한 4차원 구조, 이른바 ‘블록 우주’로 이해한다. 반면 다른 설명에서는 중력에 따라 휘어지는 역동적 장으로 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시공간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건을 설명하기 위한 틀에 불과할까? 이번 글은 이 질문이 단순한 철학 놀이가 아니라 현대 물리학의 핵심 문제라고 말한다. 상대성이론 해석은 물론 시간여행, 다중우주, 우주의 기원에 대한 상상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영원주의(eternalism)’라는 철학적 입장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본다. 이 관점에서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사건이 4차원 시공간 안에 동등하게 실재한다. 즉 우주의 역사는 이미 모두 펼쳐져 있으며, 시간은 실제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모든 순간이 이미 존재한다면, 시공간 자체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 걸까? 글은 ‘존재(existence)’와 ‘발생(occurrence)’의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방 안에 서 있는 코끼리는 시간을 견디며 ‘존재’한다. 그러나 코끼리 삶의 한 찰나만 번쩍 나타났다 사라진다면, 그것은 존재라기보다 단지 ‘일어난 사건’에 가깝다.
글에 따르면 시공간은 물체가 시간 속에서 지나온 경로를 기록하는 일종의 지도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영원주의는 이 지도 전체를 하나의 ‘실재하는 구조’처럼 다루며 시간의 흐름은 환상이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환상이 성립하려면, 그 시공간 구조 역시 어떤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간을 설명하려다 또 다른 시간이 필요해진다
논의를 더 밀어붙이면 더 큰 역설이 등장한다. 만약 블록 우주 전체가 존재한다면, 그 블록은 ‘언제’ 존재하는 걸까? 변하지 않고 펼쳐지지도 않는다면 ‘시간 없이 존재한다’고 해야 하지만, 그렇게 설명하는 순간 다시 시간 개념을 끌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려면 오히려 새로운 시간축 하나를 추가한 5차원 구조가 필요해질 수 있다고 글은 지적한다. 기존 4차원 시공간이 존재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또 다른 시간’을 상정해야 하는 셈이다. 물론 이는 현재 확립된 물리학을 넘어서는 사고실험이다.
이 문제는 대중문화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영화 터미네이터(1984)는 시간여행이 가능해도 이미 정해진 미래를 바꿀 수 없는 세계를 그린다. 반면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은 과거 개입으로 시간선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두 작품 모두 과거와 미래가 어딘가 ‘이미 존재한다’는 전제를 공유하지만, 그 존재 방식 자체는 설명하지 않는다.
연구진은 이런 논쟁이 상대성이론 수학 자체를 흔드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은 여전히 잘 작동한다. 다만 그 방정식을 우리가 어떤 언어와 철학으로 해석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공간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일은 단순한 학술 논쟁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현실 속에 살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문제라는 설명이다.
성치훈 기자 / hello@sciencewave.kr
출처: ScienceDaily, “What is space-time? A mystery at the heart of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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