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 남동부에 있는 오키퍼노키 습지는 겉으로 보기엔 그저 검은 물이 고요하게 고여 있는 늪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기후를 지키는 거대한 탄소 저장고가 숨어 있고, 수천 년 동안 쌓인 식물 흔적 속에는 과거 지구 환경의 기록도 남아 있다. 악어와 새, 곤충과 식충식물까지 수많은 생물이 살아가는 이 습지는 단순한 야생의 공간이 아니라, 기후 변화와 생태계 회복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연 실험실이기도 하다.
검은 물 아래에 숨은 탄소 저장고와 기후의 기록
오키퍼노키 습지는 특이한 ‘이탄 습지’다. 이탄은 식물이 완전히 썩지 않고 오랫동안 쌓여 만들어진 두꺼운 유기물층인데, 오키퍼노키의 물이 검게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보통 식물은 자라면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죽은 뒤 분해되면 그 탄소를 다시 공기 중으로 내보낸다. 그런데 오키퍼노키처럼 물의 흐름이 느리고 산소가 적은 환경에서는 식물이 빨리 분해되지 못한다. 그 결과 죽은 식물이 이탄으로 쌓이고, 그 안에 탄소가 오랫동안 갇히게 된다.
과학자들은 오키퍼노키에 저장된 탄소가 약 1억24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가솔린 자동차 2700만 대가 1년 동안 내뿜는 탄소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시 말해, 이 습지는 생각보다 훨씬 큰 역할로 지구 온난화를 늦추는 데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이탄은 탄소만 저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 층층이 쌓인 구조 안에는 지난 7500년 동안 이 지역의 기후와 식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남아 있다. 어느 시기에는 습지가 넓게 열려 있었고, 어느 시기에는 관목이나 숲이 들어섰는지, 또 언제 불이 나서 환경이 달라졌는지까지 알 수 있다. 이탄은 또 거대한 스펀지처럼 빗물을 머금었다가 천천히 내보내기 때문에 홍수와 가뭄의 피해를 줄이는 데도 도움을 준다. 과학자들이 이 습지를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키퍼노키를 이해하면 다른 지역 습지가 더위와 가뭄, 폭우 같은 기후 변화에 어떻게 반응할지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산 개발과 수은 오염, 습지를 위협하는 두 가지 그림자
오키퍼노키는 이처럼 중요한 습지이지만, 늘 안전했던 것만은 아니다. 과거에는 이 지역의 물을 빼내고 나무를 베어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지금은 미국 국립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돼 넓은 면적이 보호되고 있지만, 보호구역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안쪽 생태계까지 흔들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가장 큰 위협 가운데 하나는 광산 개발이다. 2019년 한 광산 회사는 습지 가장자리에 있는 ‘트레일 리지’라는 모래 언덕 지대에서 티타늄 광산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 지형은 수천 년 전 바다가 물러나며 남긴 천연 둑으로, 오키퍼노키의 얕은 물을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한다. 과학자들은 만약 광산이 이곳의 지하수를 빼내기 시작하면 습지의 수위가 낮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물이 줄어들면 지금까지 물속에 잠겨 있던 이탄이 공기에 드러나고, 그 순간 오랫동안 저장돼 있던 탄소가 빠르게 대기 중으로 방출될 수 있다. 탄소를 붙잡아 두던 저장고가 오히려 거대한 ‘탄소 폭탄’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오키퍼노키를 위협하는 것은 광산만이 아니다. 이곳 악어들의 몸에서는 또 다른 경고가 발견됐다. 연구진이 습지 악어 100여 마리의 혈액을 조사한 결과, 다른 지역 악어보다 수은 농도가 약 8배 높게 나타난 것이다. 수은은 신경 조직에 해로운 금속으로, 근육 약화와 운동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사람에게도 시각과 청각, 언어 기능에 문제를 만들 수 있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악어에서 높은 농도가 나왔다는 것은, 습지의 다른 동물들 역시 수은에 노출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겨울을 이곳에서 보내는 철새들은 봄이 되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오염의 영향이 습지 밖으로 퍼질 가능성도 있다.
오키퍼노키는 이미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로 인정받고 있고, 세계유산 등재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위상은 습지를 더 강하게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는 생태관광을 통한 새로운 기회를 줄 수도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사람이 찾는 것보다, 이 늪이 오랫동안 늪으로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지키는 일이다. 오키퍼노키의 검은 물 아래에는 아직도 우리가 다 읽지 못한 기후와 생명의 기록이 남아 있다. 그 비밀을 잃지 않으려면, 지금 이 습지를 지키는 일이 먼저다.
성치훈 기자/ hello@sciencewave.kr
출처: ScienceNewsExplores, “The Okefenokee’s dark waters hold secrets about climate and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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