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전 국민이 수시로 기생충 검사를 받고, 결과에 따라 적절한 구충제를 복용하며 살았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구충제라는 말까지 생소하게 들리고 있다. 기생충과 구충제에 대한 지식은 일생 필요한 중요한 상식이었고, 자주 출제되는 시험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인은 자신보다 반려동물의 기생충을 염려하고 있다.
지난날 의사들은 찾아오는 환자의 안색을 살피면서 약간의 문진(問診)으로 기생충 감염 여부부터 판단하는 것이 우선하는 진단이었다. ‘기생충’이라는 말은 오늘날 비판적인 사회적 언어로 흔히 쓰인다. 기생충과 구충제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어도 무방하게 된 오늘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인류 역사와 함께 살아온 기생충
인체에 기생하여 피해를 주거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하는 기생생명체(기생충 parasite)의 종류는 대단히 많다. 이, 빈대, 벼룩, 모기처럼 인체 외부에서 공격하는 종류는 외부기생충(ectoparasite)이라 하고, 소화기관이나 간 등 내부 조직에 기생하는 것들은 내부기생충(endoparasite)이라 한다. 이 블로그에서는 내부기생충을 소개한다.
외부기생충(해충)을 제거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약제는 살충제(殺蟲劑 insecticide)라 하고, 내부기생충을 제어하는 약은 구충제(驅蟲劑)라 한다. 구충제란 인체에는 피해가 거의 없고, 기생충만 제거하는 의약이다. 구충제의 영어 antiparasitic drug는 상용어(常用語)이지만, 이 말보다 anthelmintics 또는 antihelminthics라는 용어를 잘 사용한다. 이 용어 속의 헬민스(helminth)는 소화기관에 사는 내부기생충을 뜻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부기생충의 종류는 약 300종이나 되고, 원생동물(protozoa)이라 불리는 단세포 기생동물도 70여종 알려져 있다. 말라리아의 병원균은 대표적인 원생동물 기생충이다. 기생충 중에는 다른 동물의 몸에 살던 것이 인간에게 감염된 것도 있다.
기생충에 대한 의학을 기생충학(medical parasitology)이라 한다. 기생충학은 의학에서 매우 중요한 분야이므로 의과대학마다 기생충학 연구실이 있고, 나라에는 기생충학회가 있으며 전문 학술지도 발간되고 있다. 오늘날의 기생충학은 세포학, 생화학, 분자생물학, 면역학, 유전학, 진화학, 환경학 등과 복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의학자 프란체스코 레디(Francesco Redi 1626-1697)는 일생 동안 180종에 이르는 기생충에 대한 연구 기록을 남겼다. 그는 현대 기생충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자연발생설을 부정한 최초의 의학자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기생충과 구충제
회충, 편충, 십이지장충 3종의 내부기생충은 그들의 유충이 토양 속에 있다가 입(음식) 또는 상처를 통해 인체로 들어와 소화기관에 살게 된 것들이다. 이들의 알은 인체 내에서는 부화하지 못하고 변을 통해 전부 체외로 나간다. 농업기술이 발전하면서 인분(人糞)을 논밭에 비료로 쓰지 않게 되고, 수세식 화장실이 일반화되면서 농토와 거리의 흙은 기생충 알과 애벌레로 거의 오염되지 않게 되었다.
1. 회충(蛔蟲) – 3종의 기생충 중에 가장 많은 사람이 감염되어 있으며, 세계적으로 볼 때 지금도 12억 명 정도가 회충을 가지고 산다고 한다. 회충이 언제부터 인간의 작은창자(소장)에서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기생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아마 수십만 년 전부터일 것이다. 회충의 우리말은 ‘거위’인데, 지금은 거의 사라진 언어가 되었다. 회충의 영어가 roundworm인 것을 보면, 서양의 지식이 전해지면서 바뀐 듯하다. 회충은 오직 인간의 장에만 기생한다. 강아지의 회충은 종이 다르다. 회충(내부 기생충)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인터넷에서 참고하자.
2. 편충(鞭蟲) – 편충은 대장에서만 사는 기생충이다. 모양이 긴 채찍(鞭)을 닮았다고 하여 편충이라 불리게 되었고, 영어 역시 채찍벌레(whipworm)이다. 회충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편충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은 다수가 편충에 감염되어 있다. 기생충에 안전하려면 야채들은 충분히 씻어 먹고, 육류는 익혀서 먹고, 흙을 만진 손은 바로 씻어야 할 것이다.
3. 십이지장충(hookworm) – 다른 기생충과 마찬가지로 가난하고 위생적이지 못한 나라에 감염자가 많다. 십이지장충은 2종류가 알려져 있다. 이들은 기생하는 동안 장에서 계속하여 산란하지만, 외부에서 유충이 들어오지 않으면 수가 늘어나지 못하므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죽는다. 그들의 수명은 1-2년이고, 5년 이상 최장 15년을 생존한 기록도 있다. 암수가 있으며, 암컷은 매일 10,000개 이상의 알을 낳으며, 알들은 전부 변에 섞여 체외로 나간다.
십이지장충의 영어가 hookworm인 것은 그들의 머리가 갈고리처럼 굽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머리에는 입과 2쌍의 이빨이 있다. 그들의 몸길이는 5-9mm인데, 암컷이 조금 더 크다.

십이지장충은 소장의 상부(십이지장)에 살면서 피를 빤다. 1) 변 속의 알, 2) 18℃ 이상의 온도에서 잘 부화하는 유충, 3) 가느다란 유충(수명은 2주일 정도), 4) 피부의 상처를 통해 침입, 5) 혈관을 따라 폐로 이동하고, 폐포(肺胞)에서 십이지장으로 가서 기생한다. 피부를 통해 침입한 후 십이지장까지 가는데 5-9주일이 걸린다. 그림 오른쪽 상부의 CDC는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를 뜻한다.

십이지장충의 애벌레가 피부를 뚫고 들어가려고 하는 동영상이다.
위에서 설명한 3종의 기생충에 대해서는 아래의 두 가지 구충제가 공통적으로 효과가 있다.
알벤다졸(albendazole) : 회충, 편충, 요충, 십이지장충에 효과적이다. 1975년에 개발된 이 구충제는 기생충의 세포에 생리적인 변화를 일으켜 죽게 만든다.
메벤다졸(mebendazole) : 1971년에 개발되었으며, 알벤다졸과 비슷한 생리적 작용으로 구충 에 효과가 있다.

기생충 종류에 따라 알의 모습이 다르다. 변을 현미경으로 검사하면 어떤 기생충에 얼마나 심각하게 감염되었는지 판단할 수 있다.
4. 촌충(寸蟲) – 과거에는 많은 사람이 감염되었던 기생충이지만, 약효가 뛰어난 구충제들이 개발되면서 선진국에는 감염자가 극히 적다. 촌충(Taenia saginata)이라고 하면 ‘매우 짧은 기생충’일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길이가 4-10m나 되도록 자라기도 한다. 촌충의 영어인 tapeworm은 눈금이 있는 긴 줄자의 테이프처럼 납작하면서 수많은 마디가 이어진 모습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인체에 기생하는 촌충은 편절(片節)이라 부르는 마디가 1,000-2,000개 이어져 있다. 촌충은 소나 돼지의 위장에도 기생하므로, 날고기를 먹을 때 감염될 수 있다. 이 기생충은 입과 항문이 없으며, 피부에서 직접 장 속의 영양분을 흡수하며 산다.

촌충 구충제에는 praziquantel이라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1970년대에 독일에서 개발된 이 약품은 촌충의 근육을 마비시켜 죽게 만든다. 왜 마비시키는지 생리적 이유는 아직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이 구충제는 복용 후 4-5시간 지나면 약효가 반감하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다음 날 재복용하기도 한다. 약효가 빨리 사라지는 원인은 이 성분이 체내에서 화학적으로 분해되기 때문이다.
5. 디스토마(간흡충 distoma, fluke) : 디스토마 또는 간흡충이라 불리는 기생충은 간에 기생하는 편형동물이다. 디스토마는 영국의 의사 맥코넬(James McConnell)이 인도에서 근무하던 1874년에 처음 발견했다. 그러나 뒤이어 코볼드(Thomas Spencer Cobbold 1828-1886)가 1875년에 처음 과학적 기록을 남겼다. 그때 그는 이 기생충에 Distoma sinensis라는 학명을 붙였다. 이때부터 간흡충은 디스토마라고 흔히 불리게 되었고, 학명은 훗날 변경되었다.
인체에 들어온 간흡충은 쓸개에서 간으로 연결되는 담관(膽管)에서 살기 때문에 담관을 차단하게 된다. 그러면 황달(黃疸)이 오면서 간이 상하게 된다. 민물고기를 날것으로 먹으면 간흡충은 머리에 있는 흡반(吸盤)을 이용하여 위에서 간으로 이동한다. 기생충에 대한 상식이 부족하던 과거에는 환자가 많았으나, 지금은 진단법도 발달하고 효과적인 구충제도 여러 가지 알려져 있다.
간흡충(디스토마) 구충제로는 triclabendazole, praziquantel, bithionol, albendazole, mebendazole, tribendimidine 등이 알려져 있다.

간흡충(Clonorchis sinensis)은 폭 3-40mm, 길이 15-20mm 정도인 투명하고 납작한 버들잎 모양의 기생충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민물에 사는 고둥의 몸에 살며, 민물고기가 이 고둥을 먹으면 물고기에게 옮겨가게 된다. 결국 사람이 물고기를 먹으면 간흡충증에 걸린다. 기생충이 도중에 거쳐오게 되는 고둥이나 물고기를 중간숙주(中間宿主)라 하며, 이때 고둥은 1차 중간숙주, 물고기는 2차 중간숙주가 된다.
자연의 구충제
현대의 구충제가 생산되기 이전에는 전통적으로 알려진 약초를 구충제로 사용했다. 대표적인 약초에는 디스파니아와 산토닌이라는 식물이 있다.

멕시코 주변 중앙아메리카에 야생하는 식물인 디스파니아(Dysphania ambrosioides)는 구충 효과가 있는 약초이다. 과학자들은 디스파니아의 성분을 분석하여 구충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구충제로 널리 쓰이던 산토닌(santonin)은 유럽에 자생하는 아르테미시아(Artemisia maritima)의 꽃에 포함된 물질이다.

산토닌은 기생충을 직접 죽이기보다 무기력하게 만들어, 변과 함께 밀려 나오게 하는 성질이 있다. 부작용이 다소 있었지만 신약이 개발되기까지 오랫동안 이용되었다.
기생충은 소화기관 속에 사는 동안 인체의 소화효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죽으면 곧 분해되어버린다. 인체의 소화효소에 저항하던 그들의 효소가 더 이상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선진국 사람들은 자기 몸속의 기생충과 구충제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지만, 강아지, 고양이, 관상어 등의 반려동물 기생충에 대해서는 상당한 상식을 가지고 있다. 인간만 아니라 반려동물의 구충제도 개발되어 있다. 만일 어떤 구충제에 대해 부작용이 나타나면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다른 약을 처방할 수도 있다. 수만 년 동안 시달려온 기생충으로부터 인류를 자유롭게 해주는 구충제는 참으로 은혜로운 의약학의 산물이다. – 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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