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머릿속에는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오래된 ‘도마뱀 뇌’가 있고, 그 위에 생각을 담당하는 똑똑한 뇌가 새로 생겼다는 이야기가 오랫동안 널리 알려져 왔다. 하지만 동물 182종의 뇌를 살펴본 결과 실제 뇌는 오래된 뇌 위에 새 뇌를 차곡차곡 쌓은 것이 아니라, 눈이나 코처럼 살아가는 데 더 필요한 능력에 맞춰 각 부분을 크게 또는 작게 바꾸며 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머릿속에 정말 ‘도마뱀 뇌’가 있을까
화가 나서 앞뒤 생각 없이 행동하면 가끔 ‘도마뱀 뇌가 움직였다’는 말을 한다. 아주 오래된 동물의 뇌는 본능과 감정을 담당하고, 인간에게 나중에 생긴 새로운 뇌는 생각과 판단을 담당한다는 설명이다.
이 생각은 약 70년 전부터 널리 퍼졌다. 이해하기 쉬워 책이나 방송에서도 자주 소개됐다.
하지만 실제 뇌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여러 동물의 뇌를 비교했다. 모두 182종이나 살펴봤다.
그 결과 도마뱀 뇌처럼 오래된 부분 위에 새로운 부분을 하나씩 올려놓으며 커진 것이 아니었다. 동물이 살아가는 데 무엇이 중요한지에 따라 뇌의 모습이 함께 달라졌다.
쉽게 말하면 한정된 방을 어떻게 사용할지 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냄새가 아주 중요한 동물이라면 냄새와 기억 등에 필요한 부분에 더 많은 자리를 준다. 반대로 눈으로 잘 보는 것이 중요한 동물이라면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부분에 더 많은 자리를 주는 식이다.
실제로 냄새를 많이 이용하는 아홉띠아르마딜로는 냄새와 기억 등에 관계된 뇌 부분이 상대적으로 크다. 눈을 많이 사용하는 다람쥐원숭이는 보고 판단하는 데 중요한 뇌 부분이 상대적으로 크다.
즉 어떤 동물이 인간보다 ‘낡은 뇌’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 살아가는 방법에 맞게 뇌를 다르게 만든 것이다.
뇌도 좁은 집처럼 자리를 나눠 쓴다
과학자들은 컴퓨터 속에 가상의 뇌도 만들어 시험했다. 그러자 재미있는 차이가 나타났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느끼는 정보를 다루는 데 유리한 연결 방법이 따로 있었다. 냄새를 알아보고 기억하는 데 유리한 연결 방법도 달랐다.
그리고 두 능력을 모두 끝없이 크게 만들 수는 없었다. 뇌의 크기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컴퓨터 실험에서 ‘냄새를 잘 맡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건을 바꾸자 냄새와 기억에 유리한 부분이 커졌다. ‘잘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바꾸자 이번에는 시각에 유리한 부분이 커졌다.
마치 작은 집에서 주방을 크게 만들면 다른 방에 쓸 공간이 줄어드는 것과 비슷하다. 이 발견은 인공지능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의 AI는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보여주면서 공부시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동물의 뇌는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 기본적인 연결 방법을 가지고 있다.
AI에도 처음부터 해야 할 일에 알맞은 ‘뇌의 길’을 만들어준다면 지금보다 훨씬 적은 자료와 전기로도 잘 배우는 AI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인간의 머릿속에 원시적인 ‘도마뱀 뇌’가 그대로 들어 있고 그 위에 똑똑한 인간의 뇌가 덧붙었다는 설명은 지나치게 단순했다. 뇌는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에 따라 한정된 공간을 이리저리 나누면서 오랜 시간 조금씩 달라져 왔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성치훈 기자 hello@sciencewave.kr
출처: ScienceDaily, “Scientists challenge a 70-year-old ‘lizard brain’ myth”
Science Wave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