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블랙홀 충돌’, 이제 중력파로 듣고 감마선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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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웨이브

블랙홀 두 개가 충돌하면 엄청난 중력파가 발생한다. 하지만 그 장면은 대개 ‘어둡다’. 빛이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블랙홀 합병을 ‘귀로 듣는 사건’이라 칭해 왔다. 중력파로는 감지되지만, 망원경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이 상식을 흔드는 사건이 보고됐다. 블랙홀 충돌 직후, 같은 위치에서 감마선 폭발이 포착된 것이다. 만약 이 연결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블랙홀 충돌을 동시에 “보고” “들을” 수 있는 새로운 관측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

[사진=AI 생성 이미지]

블랙홀 충돌 직후 감마선 폭발이 관측되다

2024년 11월, 중력파 관측 네트워크인 LIGO–Virgo–KAGRA(LVK)는 S241125n이라는 사건을 포착했다. 두 블랙홀이 서로 공전하다가 결국 충돌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에 발생한 중력파였다. 그런데 이 신호가 관측된 지 약 11초 뒤, 같은 하늘 영역에서 짧은 감마선 폭발이 위성에 의해 기록됐다.

일반적으로 블랙홀 충돌은 빛을 거의 만들어내지 않는다. 중성자별 충돌과 달리 주변 물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사건에서 감마선 폭발이 나타나는 일은 매우 드물 것으로 생각돼 왔다.

이번 관측에서는 미국의 스위프트 위성이 먼저 짧은 감마선 폭발을 포착했고, 이어 중국의 아인슈타인 프로브가 같은 지역에서 엑스선 잔광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두 신호가 우연히 같은 방향에서 나타났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분석했다. 계산에 따르면 이런 우연한 일치는 약 30년에 한 번 정도 나타날 확률이다. 아직 확정적인 결론은 아니지만, 통계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사건이라는 평가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감마선 폭발의 성질이다. 폭발의 에너지와 지속 시간은 일반적인 ‘짧은 감마선 폭발’과 비슷했지만, 방출된 광자의 에너지 분포는 조금 달랐다. 초기 감마선 신호는 보통보다 더 부드러운 스펙트럼을 보였고, 이후 나타난 잔광은 오히려 더 강한 특성을 보였다. 이는 평소와 다른 방출 메커니즘이 작동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중력파 사건 LVK S241125n과 감마선 폭발(GRB) 위치를 나타낸 중력파(GW) 하늘 지도. 지도의 컬러바는 중력파 발생 위치의 상대적 확률 밀도를 나타낸다. 흰색 실선은 90% 신뢰 수준의 윤곽선을 의미하며, 삽입된 확대도의 파란색 십자 표시는 전자기파 대응 천체 후보의 위치를 가리킨다. 녹색 곡선은 은하 평면을 나타낸다.
[사진=The Astrophysical Journal (2026)]

은하 중심의 가스 원반에서 벌어진 충돌일 수도

이 사건은 또 다른 이유에서도 특별하다. 충돌이 일어난 위치가 매우 먼 곳이기 때문이다. 중력파가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약 42억 년이 걸렸으며, 이는 우주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 벌어진 사건이라는 뜻이다.

합쳐진 두 블랙홀의 질량도 상당히 컸다. 분석 결과 두 블랙홀의 총질량은 태양 질량의 100배를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관측된 대부분의 블랙홀 합병이 수십 배 규모였던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무거운 사례다. 이런 거대한 블랙홀은 이전에 다른 블랙홀들과 합쳐지며 성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연구팀은 이 이상한 감마선 폭발을 설명하기 위해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두 블랙홀이 은하 중심에 있는 초대질량 블랙홀 주변의 가스 원반, 즉 활동은하핵 원반 안에서 충돌했을 가능성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가스와 먼지가 매우 밀집해 있어 블랙홀 주변에 풍부한 물질이 존재한다.

두 블랙홀이 합쳐질 때 중력파가 비대칭으로 방출되면, 새로 만들어진 블랙홀이 강한 반동 속도로 튕겨 나갈 수 있다. 이 블랙홀이 주변 가스를 빠르게 삼키기 시작하면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한다. 물질이 블랙홀로 떨어지며 형성된 강력한 자기장 환경에서는 거의 빛의 속도로 분출되는 제트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 제트가 가스 원반을 뚫고 나가는 과정에서 충격파가 형성되고, 결국 원반 표면을 뚫는 순간 강력한 고에너지 방출이 일어날 수 있다. 연구진은 바로 이 과정이 짧은 감마선 폭발로 관측됐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가스 유입 원반 내에서 두 블랙홀이 합병하며 제트를 분출하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
[사진=Shu-Rui Zhang]

중력파와 빛을 함께 보는 ‘멀티 메신저 천문학’

만약 이 해석이 맞다면, 이번 사건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금까지 블랙홀 합병은 오직 중력파로만 관측됐다. 하지만 특정한 환경에서는 빛으로도 그 흔적을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방식의 신호를 동시에 관측하는 연구를 ‘멀티 메신저 천문학’이라고 부른다. 중력파는 사건의 질량과 거리 정보를 알려 주고, 빛은 주변 환경과 물질의 성질을 보여 준다. 두 정보를 함께 분석하면 블랙홀 주변 환경과 제트 형성 과정 같은 물리 현상을 훨씬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사건은 우주의 팽창 속도를 측정하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중력파로 거리를 측정하고, 해당 은하의 적색편이를 통해 우주의 팽창을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랙홀 충돌이 반드시 어둠 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줄 가능성이 이제는 생긴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는 가장 어두운 우주의 충돌도 강렬한 빛을 남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빛은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창이 될 것이다.

성치훈 기자/ hello@sciencewave.kr

출처: Phys.org, “A 100-solar-mass black hole merger ripples spacetime, and may flash in gamma r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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