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보다 강하고 알루미늄보다 가벼운 물질, 그래핀(graphene)이 이제는 세균까지 죽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과학자들은 빛을 받으면 활성화되는 새로운 그래핀 기반 코팅 물질을 개발했다. 이 물질은 표면에 붙은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를 제거할 수 있다. 심지어 사람의 입속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핀은 어떤 물질인가
그래핀은 탄소 원자 한 층으로 이루어진 매우 얇은 물질이다. 전기가 잘 통하고, 기계적으로 매우 강하다. 발견된 지 20여 년 만에 콘크리트 강화, 스포츠 장비, 전자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이번 연구에서 사용된 것은 ‘그래핀 산화물(graphene oxide)’이다. 이는 탄소 원자 층에 산소가 포함된 분자가 붙어 있는 형태다. 물과 잘 섞여 산성 액체를 만들 수 있다.
연구진은 여기에다 질소를 조금 더했다. 이렇게 물질에 다른 원소를 일부러 추가하는 과정을 ‘도핑‘이라고 부르며, 그렇게 탄생한 새 물질은 ‘질소 도핑 그래핀 산’이라고 한다.
이 물질의 가장 큰 특징은 빛을 받으면 활성화된다는 점이다. 빛이 그래핀에 닿으면 화학 반응이 시작된다. 먼저 물질이 약간 따뜻해진다. 이 열만으로도 일부 미생물을 죽일 수 있다. 동시에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해 ‘라디칼(radical)’이라는 반응성이 매우 강한 분자가 생성된다.
라디칼은 세균과 바이러스의 세포 구조를 공격해 파괴할 수 있다. 즉, 열과 화학 반응이 동시에 작동해 미생물에 ‘이중 타격’을 가하는 셈이다.
연구진은 이 물질을 실험실에서 세균과 함께 배양했다. 적외선 빛을 비추자 세균이 자라지 못했다. 적외선은 햇빛과 일부 실내조명에도 포함돼 있다.
또한 사람 피부와 비슷한 조직을 모방한 화학 물질에 테스트했을 때, 해로운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인체에 비교적 안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기존의 항균 코팅은 금속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물질은 자외선(UV) 같은 강한 빛이 있어야 활성화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 그래핀 기반 코팅은 일반적인 실내조명이나 햇빛에서도 항균 효과를 낼 수 있다.
입속 세균을 잡는 코팅으로 개발 중
연구진이 특히 주목하는 사용 장소는 사람의 입이다. 입속에는 수많은 세균이 살고 있다. 치과 임플란트 시술 후에는 감염 위험이 커진다.
연구팀은 치아 위에 씌울 수 있는 스플린트 형태의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이는 액체 형태의 그래핀 코팅이 담긴 트레이로, 몇 분간 치아에 씌우면 표면에 얇은 막이 형성된다. 이후 입 안에 빛을 비추면 항균 작용이 시작된다.
연구진은 잇몸 질환을 일으키는 세균을 상대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앞으로는 환자가 집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항생제 내성 세균에도 희망
현재 전 세계적으로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 이른바 ‘슈퍼버그’가 큰 문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항생제 내성 감염으로 매년 125만 명 이상이 사망한다.
그래핀처럼 열과 화학 반응을 동시에 이용해 세균을 공격하는 물질은 이런 내성 세균을 제어하는 새로운 방법이 될 수 있다.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물리·화학적 방식으로 세균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빛만 있으면 작동하는 이 얇은 코팅은 병원 손잡이, 난간, 치과 기구 등 다양하게 활용될 전망이다.
성치훈 기자/ hello@sciencewave.kr
출처: Science News Explores, “New light-activated coating can kill stubborn ge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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