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주름, 손의 진화를 보여주는 흔적일까
장시간 수영을 하거나 따뜻한 물에 손을 담그면 손가락에 쭈글쭈글한 주름이 생긴다. 이 흔한 현상, 이른바 ‘물주름(pruney fingers)’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그 원인은 오랫동안 단순한 생리 반응으로 설명돼 왔다. 피부 세포가 수분을 흡수해 부풀고, 그 아래 혈관의 모양에 따라 피부가 접히면서 주름이 형성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최근 과학자들은 이 해석에 의문을 던졌다. 손가락 주름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감각신경과 혈관 수축이 관여된 신경계 기반의 반응일 수 있으며, 인류 진화와도 관련이 있다는 새로운 연구가 제시됐다. 해당 연구는 과학 전문 매체 <Science News Explores>가 2025년 7월 9일자 기사에서 소개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이 기사에서는 뉴캐슬대학교와 빙햄턴대학교 연구진의 최신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물주름의 원인과 의미를 생물학적·진화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수중 환경에 적응한 손의 전략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주름은 단순한 수분 반응이 아니라 감각신경계가 개입하는 능동적인 반응으로 나타난다. 영국 뉴캐슬대학교의 행동진화학자 톰 스멀더스(Tom Smulders) 교수는 손가락이 물속에 잠기면 감각신경이 이를 감지해 뇌에 신호를 보내고, 뇌는 혈관을 수축시키는 명령을 내린다고 설명한다. 이로 인해 혈관 주변의 피부가 안으로 잡아당겨지며 주름이 형성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반응이 물속에서 물체를 더 안정적으로 쥐게 만든다는 것이다. 고대 인류는 조개, 물고기, 해조류 등을 채집하며 긴 시간 물속에서 활동했다. 창이나 도구를 들고 조작하던 이들의 손은, 주름진 상태에서 미끄러짐을 줄이고 접지력을 높였을 가능성이 있다. 실험 결과에서도, 물주름이 있는 손은 젖은 돌이나 비누 같은 미끄러운 물체를 더 안정적으로 잡을 수 있었다. 주름진 피부가 약 20%가량 표면적을 넓히며, 결과적으로 물속 작업에 유리한 구조를 제공했던 셈이다.

패턴은 다르고, 반복은 정확하다
물주름은 신체 기능뿐 아니라 개인의 생리적 특성과도 관련되어 있다. 뉴욕 빙햄턴대학교의 의생물공학자 가이 저만(Guy German) 교수는 한 과학 행사 중 청중의 어린이로부터 받은 질문을 계기로 새로운 실험을 설계했다. 질문은 이랬다. “물에 들어갈 때마다 주름이 똑같이 생기나요?”
저만 교수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참가자 세 명의 손을 40℃의 물에 30분간 담근 뒤 물주름을 촬영하고, 24시간 후 동일한 절차로 다시 주름을 관찰했다. 이 주름들의 형태를 지형학적 분석으로 비교한 결과, 각 참가자의 손가락에서 나타난 주름 패턴은 일관되게 반복됐다. 물주름이 무작위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 내부의 혈관 구조를 반영한 일정한 형태로 형성된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이 발견은 물주름이 단기적 반응이면서도 개별적 특성을 지닌 신체 표식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문이 그렇듯, 주름도 사람마다 다르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이는 향후 생체인식 기술의 새로운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생리 반응 너머의 생물학적 기록
물주름은 일시적인 변화처럼 보이지만, 신체 내부 구조를 표면 위에 떠오르게 만드는 반응이다. 감각신경, 혈관 분포, 피부 조직의 상호작용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이 주름은 물속에서 발생하는 생리 반응이자, 동시에 개인의 생리적 특성과 환경 적응 능력을 반영하는 일종의 생물학적 지도에 가깝다.
지문처럼 평생 유지되는지 여부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한 사람의 몸이 가진 구조적 특징이 반복적 형태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물주름은 충분히 과학적 대상이 될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이러한 반복성과 정밀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인식 기술이나 의학적 활용이 가능해질 수 있다. 평범해 보이는 피부의 반응 하나에도, 우리 몸이 가진 구조적 기억이 담겨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탐구의 여지가 많은 과학적 지점을 남긴다.
과학은 시작은 당연한 것을 의심할 때 시작
누구나 지나쳤던 손가락 주름에 대해 “항상 같은 모양인가요?”라고 던진 한 아이의 질문은, 익숙함에 숨어 있던 생물학적 패턴을 끌어냈다. 단순히 주름을 관찰한 것이 아니라, 그 반복성과 원인을 추적한 끝에 감각신경과 혈관 구조가 만든 고유한 패턴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렇게 과학은 사소한 의문에서 시작해 새로운 설명 체계를 만들어낸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과학사 곳곳에 존재한다. 사과가 떨어지는 모습을 반복해 본 뉴턴이 만유인력 개념을 정립했고, 단순한 곰팡이 관찰에서 출발한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은 항생제 시대를 열었다. 또한 ‘팔이 아플 때 귀가 울리는 이유는 뭘까?’ 같은 생리학적 질문은 말초신경의 경로와 감각 전달 체계를 밝히는 실마리가 되었다.
과학은 대단한 장비나 실험보다, 흔한 일상에서 던지는 집요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중요하지 않아 보였던 의문이, 설명할 수 없던 현상을 풀고 새로운 이해를 여는 출발점이 된다. 바로 그런 시선이 과학을 살아 있게 만든다.

Journal: R. Laytin and G. K. German. On the repeatability of wrinkling topography patterns in the fingers of water immersed human skin. Journal of the Mechanical Behavior of Biomedical Materials. Vol. 165, May 2025.
Science Wave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