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이미 많은 글쓰기를 대신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누가 썼는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앞으로 글의 가치는 문장의 완성도가 아니라, 그 글 뒤에 실제 사람이 존재하는지에 달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인쇄술부터 AI까지… 글쓰기를 바꾼 기술들
15세기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자를 실험하던 시기, 필사자들은 자신들의 일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글의 내용은 그대로였지만, 그것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완전히 바뀌고 있었다. 변화는 결과물이 아니라 ‘생산 방식’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글쓰기는 여러 기술 변화를 겪었다. 타자기의 등장은 글을 더 기계적이고 균일하게 만들었고, 워드프로세서와 인터넷은 글쓰기와 출판의 문턱을 크게 낮췄다. 누구나 쉽게 글을 쓰고 공개할 수 있게 되면서, 텍스트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글은 점점 더 흔해지고, 때로는 쉽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변화 속에서도 글쓰기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AI가 바꾼 건 ‘글의 본질’이다
이번 변화는 이전과 성격이 다르다. 과거 기술은 글을 ‘어떻게 쓰고 퍼뜨리는가’를 바꿨다면, 생성형 AI는 ‘글이 무엇인가’를 흔들고 있다.
이제 독자는 어떤 글을 읽을 때, 그것이 실제 사람이 쓴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AI는 의미 있는 ‘작성자’ 없이도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들어낸다. 즉, 글은 존재하지만 그 글에 책임을 지는 주체는 사라진다.
이 변화는 여러 영역에 영향을 준다. 학술 논문은 실제로 저자가 사고 과정을 거쳤는지 검증하기 어려워지고, 법률 문서나 의료 기록처럼 책임이 중요한 글들도 신뢰 문제가 생긴다. 심지어 개인 메시지조차 사람이 직접 쓴 것인지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인터넷 환경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검색 결과, 리뷰, 뉴스, SNS 등 다양한 공간이 점점 더 ‘기계가 만든 텍스트’로 채워지고 있으며,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구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앞으로 살아남는 글의 조건
그렇다면 앞으로 글의 가치는 어디에서 생길까. 핵심은 ‘내용’이 아니라 ‘관계’에 있다.
사람이 글을 쓸 때는 단순히 문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에 책임을 진다. “이건 내가 쓴 글이다”라고 말하고, 그에 따른 평가를 감수한다. 하지만 AI는 이런 책임을 질 수 없다.
이 때문에 앞으로 중요한 글은 ‘사람이 고민하고 판단한 흔적’을 보여주는 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망설임, 수정 과정, 개인적인 판단과 경험 같은 요소들이 오히려 가치가 된다. 완벽하게 매끈한 문장보다, 인간적인 흔적이 남아 있는 글이 더 신뢰받게 될 수 있다.
결국엔, 글쓰기의 기준 자체가 바뀌고 있다. 얼마나 잘 썼는지가 아니라, 누가 어떤 책임을 가지고 썼는지가 중요해지는 방향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글쓰기는 더 느려지고, 더 신중해지고, 다시 ‘사람’ 중심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성치훈 기자/ hello@sciencewave.kr
출처: Psyche, “We’ll soon find out what is truly special about human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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