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가 뽑아내는 실은 거미줄(spider silk)이라 하고, 누에의 애벌레가 고치를 지을 때 생성하는 실(silk)은 생사(生絲), 명주실, 견사(絹絲) 또는 비단실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다. 거미의 실을 거미줄이라 하듯이, 누에실이나 누에줄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 것 같다. 명주실의 명주(明紬)는 ‘누에실로 짠 천’이라는 의미이고, 비단(緋緞), 견직(絹織), 견직물(絹織物) 등도 명주와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누에를 키워 명주를 생산하는 양잠(養蠶)은 약 4,700년 전에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는 약 3,000년 전에 전래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누에를 키워 견직(명주)을 생산하는 산업은 잠사업(蠶絲業), 양잠업(養蠶業)이라 하며, 잠(蠶)은 누에를 뜻하는 한자어이다.

누에의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기 직전에 명주실을 뿜어내어 자신을 보호할 타원형의 고치를 만든다. 사진은 성충이 되어 고치를 뚫고 나온 누에나방과 고치의 모습이다. 누에 농가에서는 성충이 되기 전에 고치를 끓는 물에 찌고, 고치의 실을 풀어내어 명주실을 만든다. 누에는 꿀벌처럼 ‘가축 곤충’이 되면서 자연번식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사람이 돌보아야 살 수 있게 되었다.

삶은 고치에서 명주실을 전부 풀어내면 번데기만 남는다. 누에 번데기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 식품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잠사(蠶事)가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산업이었다. 역사 속에는 잠사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1890년에는 서울에 잠업시험장이 설치되어 양잠기술을 보급시켰고, 1900년에는 농상공부 산하에 잠업과가 신설되어 잠사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양잠이 더욱 중요한 산업으로 육성되었다.
광복 후에는 잠사가 중요한 농촌 소득증대사업이 되었지만 6.25 전쟁으로 잠사 시설이 파괴되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1952년에는 제2위 수출상품이 견직이 되기도 했다. 특히 1962-1976년까지 15년간은 잠사산업이 최고 수준으로 발달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농가의 약 20%가 양장농이었을 정도였고, 누에의 먹이인 뽕잎을 재배하는 뽕나무 밭의 면적은 전체 밭의 10%를 차지할 정도였다. 누에의 번데기는 중요한 단백질 식품의 하나였으며, 잠실(蠶室)이라는 지명은 지금도 남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인공합성 섬유가 대량생산되면서 견직의 수출이 감소하게 되었고, 한편으로 우리나라의 산업이 급발전하면서 인건비가 많이 드는 노동집약적인 양잠산업은 위축되기 시작했다. 이후부터는 오히려 생사(生絲)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오늘날의 잠사 최대 생산지는 중국과 인도이다. 농촌에서 양잠이 완전히 사라져버리면서 지금의 청소년들은 뽕나무, 누에 등에 대해 거의 무관심하게 되었다.
합성섬유의 발달
누에실(silk)의 성분을 연구하던 화학자들은 그것이 폴리아미드(polyamide) 즉 같은 구조의 단백질 분자가 길게 연결된 섬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과학자들은 폴리아미드를 인공합성하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고, 1930년대 후반에 미국의 듀퐁(DuPont)사는 나일론(nylon)이라 명명한 인공합성 섬유를 개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강철보다 5배나 강한 섬유로 알려진 케블라(Kevlar)라는 섬유 역시 1960년대에 듀퐁사에서 개발된 폴리아미드이다. 케불라는 가벼우면서 질기고 강하기 때문에 방탄복, 자전거 타이어, 경주용 보트 제작 등에 이용된다.
생체모방공학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거미줄과 명주실(누에줄)을 인공적으로 만들고 싶어 했으나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나일론이나 케블라와 같은 합성섬유를 생산하려면 화석연료를 대량 사용해야 하고, 온실가스와 공해물질도 발생한다. 그러므로 과학자들은 질기고, 촉감이 좋고, 다양하게 염색이 되며, 정전기가 발생하지 않는 비단을 공해 없이 효과적으로 생산하는 방법을 경쟁적으로 연구하게 된 것이다.
거미줄을 뽑아내는 누에 탄생
거미줄은 가벼우면서 케블라보다 6배나 질기고 탄성이 좋은 특징이 있다. 거미줄 2kg이 있으면 지구를 1바퀴 감을 수 있을 정도이다. 거미 외에는 만들지 못하는 거미줄은 대량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 아직 없다. 그러나 누에가 명주실 대신 거미줄을 뽑아낸다면 거미실을 대량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과학자들은 박테리아, 효모, 쥐, 햄스터 심지어 염소까지 유전자를 편집하여 거미줄을 생산하거나 거미줄 성분을 가진 털이 자라 나오도록 노력했으나 전부 실패로 끝났다. 드디어 중국 상하이 동화대학의 생물학자 준펭미(Junpeng Mi) 교수가 명주실 대신 거미줄을 뽑아내는 누에를 유전자 편집으로 탄생시켜, 그 연구 결과를 2023년 10월 4일 발행된 학술지 <Matter>에 발표했다.
‘CRISPR/Cas9’이라는 유전자 가위를 사용하여 누에의 유전자에 ‘거미줄 생성 유전자’를 집어넣어 명주실 대신 거미줄(단백질)을 내는 변종 누에를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유전자 변형 누에가 생산한 거미줄은 화학적으로 완전한 거미줄이었다고 한다.

사진은 유전자 변형된 누에가 거미줄 성분으로 된 실을 내어 고치 형태로 만든 것을 보여준다. 이 거미줄은 일반 거미줄과 다름없는 성질을 가졌다고 한다. 유전자가 변형된 누에를 대량 육성하는 방법은 아직 개발하지 못했지만, 이 실험이 성공하면서 유전자를 변형시킨 누에를 대량 키우면 거미줄을 대규모로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났다.

유전자 변형 누에가 뽑아낸 거미줄을 검은색 원통 위에 감은 사진이다.

논문에 발표된 ‘누에 거미줄’의 성질과 성분을 설명한 영상이다.
누에 거미줄 생산 실험에 성공한 준펭미 교수의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 이어 유전자 변형 누에를 대량 육성하는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연구가 성공적으로 실현되면, 누에농가처럼 ‘유전자 변형 거미줄 누에’를 기르는 농장이 생겨날 것이다. 또한 대량 생산된 거미줄을 꼬아 특수한 천이나 로프를 생산하는 신산업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연구를 계속하는 동안 거미줄 단백질의 인공합성에도 성공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 YS
참고문헌
J. Mi et al. High-strength and ultra-tough whole spider silk fibers spun from transgenic silkworms. Matter. Vol. 6, October 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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