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잠깐”···동물도 말하기 전, 먼저 신호 준다

Photo of author

By 사이언스웨이브

“저기요.” “이봐요.” “헤이(hey).”

사람은 말을 꺼내기 전에 이런 한마디로 먼저 상대의 귀를 연다. 방송도 본문보다 앞서 종소리로 청중의 주의를 모은다. 말보다 앞서 신호가 울리는 순간, 대화는 비로소 시작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런 ‘주의를 끄는 소리(alerting signal)’는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물도 본격적인 의사소통에 들어가기 전에, 상대의 집중을 유도하는 신호를 낸다. 연구진은 이러한 소리가 “저기, 잠깐” 혹은 “이봐, 들어봐”에 해당하는 동물의 표현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이른바 ‘주의 환기 신호’는 말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예비 단계로, 상대의 청각적 초점을 맞춰주는 역할을 한다. 인간의 대화처럼, 동물의 세계에서도 먼저 귀를 여는 것이 소통의 시작인 셈이다.

‘잠깐, 내 얘기 좀 들어봐’···신호

연구팀은 동물의 주의 환기 신호(alerting signal)를 세 가지 층위에서 분석했다. 신호 자체, 신호를 내는 개체, 그리고 이를 듣는 개체의 반응이다.

동물의 주의 환기 신호를 형상화한 장면. 한 개체가 입을 벌려 울음을 내자 주변 동물들이 머리를 돌려 집중하고 있다. 본격적인 의사소통에 앞서 상대의 주의를 끄는 ‘소리의 순간’을 상징한다. [사진=Midjourney 제작 이미지]

첫째, 신호는 멀리서도 들려야 하고 주변 소음에 묻히지 않아야 한다. 숲속, 바람, 다른 동물의 울음 속에서도 구별되어야 한다.
둘째, 발신자는 상황에 따라 신호를 조절해야 한다. 이미 주변의 주의가 집중되어 있다면 신호를 생략할 수 있고, 소음이 심할 때는 반복해 사용할 수도 있다.
셋째, 수신자는 그 소리를 들은 뒤 더 빠르고 더 자주 반응해야 한다. 반응 속도와 빈도의 상승이 ‘주의 환기 효과’를 입증한다.

행동생태학자 블라드 드마르체프(Vlad Demartsev)는 “동물에게는 주변을 끊임없이 살피는 일이 생존의 기본이다. 하지만 한 자극에만 집중하면 포식자를 놓칠 수 있다. 주의 환기 신호는 수신자의 집중을 순간적으로 모으고, 발신자에게는 자신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바위너구리의 ‘웨일’, 귀를 여는 첫 음절

바위너구리는 사회성이 높은 초식성 포유류로, 수컷이 복잡한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처음엔 길고 낮게 울리는 ‘웨일(wail)’, 이어지는 ‘트릴(trill)’, 마지막으로 짧고 빠른 ‘치터(chitter)’다. 웨일은 노래의 시작을 알리는 음으로, 다른 부분과 달리 개체의 나이, 서열, 체격과는 관련이 없다. 연구팀은 이 웨일이 상대의 주의를 끄는 신호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았다.

바위너구리(rock hyrax). 아프리카 절벽 지대에 서식하는 사회성 포유류로, 수컷은 복잡한 노래를 부른다. 연구에 따르면 이 노래의 도입부인 ‘웨일(wail)’은 본격적인 의사소통에 앞서 상대의 주의를 끄는 신호로 작용한다.

수년간의 음성 자료 분석 결과, 웨일은 항상 노래의 첫머리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미 주변이 소란스럽거나 주의가 집중된 상황(예: 포식자 출현, 싸움, 경보음 등)에서는 생략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주의를 끌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는 웨일이 사용되지 않았다.

현장 실험에서도 같은 경향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웨일이 포함된 노래와 제거된 노래를 번갈아 재생하며 주변 개체의 반응을 관찰했다. 웨일이 빠진 노래에서는 반응 속도와 빈도가 뚜렷하게 낮았다. 웨일은 중간 거리에서도 안정적으로 전달되었으며, 바람이나 지형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았다.

소리를 통해 무리의 주의를 끄는 동물의 모습. 동물의 울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주변의 집중을 유도하고 의사소통을 시작하는 신호로 작용한다. [사진=Midjourney 제작 이미지]

귀 먼저 열다···집중 유도와 반응 조절

연구팀은 바위너구리의 웨일이 완벽한 형태의 주의 환기 신호는 아니지만, 말하기 전에 상대의 집중을 유도하는 핵심 기능을 수행한다고 밝혔다. 드마르체프는 “웨일은 단순히 귀를 열게 만드는 소리일 뿐 아니라, 아직 규명되지 않은 추가 정보를 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 소음이나 서식지 구조, 포식자 위험 같은 요소가 신호의 형태와 사용에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동물의 의사소통을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집중 유도와 반응 조절’의 과정으로 확장해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말하기 전에 어떻게 상대의 귀를 여는가다.

연구팀은 앞으로 이 분석 틀을 다른 종에도 적용해, ‘발신 전 주의집중 신호’가 어떻게 진화했고, 포식자나 경쟁자에게 들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유지되는지를 탐구할 계획이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참조 논문: Vlad Demartsev et al, Alerting components in animal vocalization, Animal Behaviour (2025). DOI: 10.1016/j.anbehav.2025.123373

자료: Animal Behaviour / University of Konstanz 


Science Wave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

Science Wave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