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단어를 계속 반복해서 말하다 보면, 갑자기 그 단어가 낯설어지고 뜻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 적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언어, 언어, 언어…”를 수십 번 반복하면, 어느 순간 이 말이 그냥 소리처럼 들린다. 이를 ‘의미 포만’ 현상이라고 부른다. 과학자들은 이런 청각 현상이 오히려 언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라고 말한다.
언어는 뇌 여러 부위가 함께 만드는 작업
언어는 단순히 말을 하는 일이 아니다. 문장의 구조를 다루는 구문(syntax), 단어의 뜻을 이해하는 의미(semantics), 소리를 처리하는 청각 처리(auditory processing) 등 여러 과정이 동시에 일어난다. 이 때문에 뇌 안의 여러 신경망이 함께 작동해야 우리가 말을 이해하고 만들어낼 수 있다.
이처럼 어떤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노래처럼 들리는 현상, 혹은 단어가 뜻을 잃어버리는 현상 등을 통해 뇌가 문장을 조립하는 방식을 추적하는 연구진은 “이런 오류를 보면, 우리가 생각을 문장으로 만들기 위해 뇌가 어떤 단계를 거치는지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의미 포만은 단어를 반복하다가 뜻이 사라지는 경험을 말한다. 이를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가 ‘노드 구조 이론(Node Structure Theory)’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뇌에는 서로 다른 두 체계가 있다.
하나는 단어의 의미를 저장하는 ‘의미 노드’이고, 다른 하나는 음절과 소리를 저장하는 ‘음운 노드’다. 예를 들어 ‘프리스비’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한쪽에서는 “둥글다”, “던질 수 있다” 같은 의미 정보가 활성화된다. 동시에 다른 쪽에서는 ‘프리스’와 ‘비’라는 음절, 그리고 그 안의 자음과 모음 소리 정보가 활성화된다.
이 두 체계는 연결되어 있어서 우리가 단어를 이해하고 말할 수 있게 도와준다.

[사진=iStock.com]
같은 단어를 반복하면 의미 뉴런이 지친다
처음 단어를 말할 때는 의미를 담당하는 뉴런이 활발히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우리는 그 단어의 뜻을 또렷하게 느낀다.
하지만 같은 단어를 계속 반복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의미를 담당하는 뉴런이 너무 자주 자극을 받아 피로 상태에 빠진다. 원래 뉴런은 한 번 신호를 보낸 뒤 잠시 쉬는 불응기가 필요한데, 반복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하면 신호를 멈춰버린다.
그 결과 의미 신호는 약해지고, 남는 것은 소리 정보뿐이다. 우리는 단어를 계속 발음하지만, 그 말은 이제 뜻이 아니라 단순한 소리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점은, 음절을 담당하는 뉴런은 계속 작동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근육에 비유한다. 근육에는 빨리 지치는 속근과 오래 버티는 지근이 있다.
의미 뉴런은 비교적 빨리 지치는 속근에 가깝고 회복도 느리다. 덕분에 우리는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쉽게 전환할 수 있다. 반면 음절을 담당하는 뉴런은 덜 지치고 빠르게 회복된다. 같은 음절을 다양한 상황에서 반복해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언어 시스템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의미 포만 현상
연구진은 사람들에게 단어나 문장을 반복하게 한 뒤, 언제 의미가 달라졌다고 느끼는지 보고하게 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뇌파 같은 전기생리학적 방법을 사용해 뇌 어디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또 일부 연구자들은 딥러닝 모델을 활용해 이런 현상이 어떻게 생기는지 분석하고 있다.
언어라는 복잡한 시스템의 구조 때문에 인간은 자주 이상한 경험을 한다. 같은 단어를 계속 말하다가 뜻이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뇌 속에서 의미와 소리를 담당하는 회로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정밀하게 작동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성치훈 기자/ hello@sciencewave.kr
출처: The Scientist, “Why Does Repeating a Word Make It Lose Its Meaning?”
Science Wave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