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에 유독 취약할까?” 전 세계 과학계가 오랫동안 매달려온 이 질문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가 포착됐다. 스트레스가 행동 변화로 이어지는 순간을 결정하는 뇌 속의 ‘비밀 결합’이 발견된 것이다.

[사진=Faught, Aviles & Schaaf]
코르티솔의 ‘짝짓기’ 방식이 기분을 결정한다
신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부신에서는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뇌 속의 두 가지 단백질 수용체인 미네랄코르티코이드(MR)와 글루코코르티코이드(GR)에 결합하여 생리적 반응을 조절한다.
기존 학계는 이 수용체들이 주로 동일한 종류끼리 쌍을 이루어 작용하는 것으로 보았으나,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교 연구팀은 전혀 다른 메커니즘을 찾아냈다. 연구 결과, MR 하나와 GR 하나가 만나 특별한 ‘이종 이량체(Heterodimer)’를 형성할 때만 우리 행동이 급격히 변화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정 열쇠와 자물쇠가 정확히 맞물려야 뇌 속의 ‘불안 스위치’가 켜지는 셈이다.
제브라피쉬가 증명한 ‘불안의 생물학적 경로’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이 ‘이종 커플’을 형성하지 못하게 만든 제브라피쉬를 관찰했다. 실험 결과, 이 제브라피쉬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주입해도 불안 증세를 보이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이 유영했다.
조사 결과, 이 비밀 수용체 쌍은 뇌의 흥분을 조절하는 ‘글루타메이트’ 관련 유전자를 직접 제어하고 있었다. 이 과정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세로토닌이나 GABA 등 감정을 조절하는 다른 신경전달물질 체계에 영향을 주고, 최종적으로 인간의 불안이나 우울과 유사한 상태를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 결합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 질환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신 질환 치료의 새로운 이정표 될 것
이번 연구를 이끈 마르셀 샤프 교수는 “스트레스가 어떻게 정신 건강 장애로 이어지는지 그 구체적인 생물학적 경로를 입증한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는 단순히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차원을 넘어, 뇌의 신호 전달 체계를 직접 교정하는 차세대 정밀 치료제 개발에 중요한 근거가 될 전망이다.
과학자들은 현재 뇌뿐만 아니라 면역계 등 신체 전반에서 이 수용체 결합이 미치는 영향을 추적하고 있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분자 정신의학(Molecular Psychiatry)’에 게재되며 의학계와 생물학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성치훈 기자/ hello@science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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