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아이’ 돌보기, 반복되는 관계의 상처를 끊어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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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웨이브

어른이 된 후에도 어떤 감정은 유난히 크게 밀려온다. 별일 아닌 말에 갑자기 화가 치밀고, 답장이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질 것 같은 불안이 생기고, 누군가의 인정이 없으면 마음이 금세 흔들린다. 이런 반응은 흔히 현재의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심리학계에서는 그 밑바닥에 훨씬 오래된 감정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본다. 이른바 ‘내면 아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사진=AI 생성 이미지]

내면 아이는 어린 시절의 감정이 남긴 흔적이다

심리역동 치료에서는 사람의 마음이 어린 시절 경험했던 관계의 방식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따뜻함, 거리감, 일관성, 비판, 무관심 같은 경험은 단지 그때로 끝나지 않고 마음속에 하나의 관계 패턴처럼 남는다. 겉으로는 사랑받으며 자란 사람이라도, 부모가 늘 불안했거나 감정을 잘 다루지 못했거나, 아이가 너무 일찍 철이 들어야 했던 환경에 놓였다면 ‘언제 위로가 올지 모르겠다’는 불안이 남을 수 있다.

그렇게 형성된 대처 방식은 어린 시절에는 생존에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어른이 된 뒤에는 오히려 친밀감과 안정감을 방해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버려질까 봐 지나치게 매달리거나, 상처받기 싫어서 먼저 멀어지거나,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잘하려 하거나, 사소한 말에도 자기 비난이 폭발하는 식이다. 겉으로 보기엔 과민 반응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예전의 상처가 지금의 관계 속에서 다시 활성화되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이런 반응을 ‘내가 이상해서’라고 해석하지 않는 것이다. 심리치료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망가진 성격이 아니라, 한때는 그렇게 반응해야만 버틸 수 있었던 어린 마음의 흔적일 수 있다. 문제는 그 감정을 억누르는 방식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는 점이다. 감정을 무시할수록 처음 상처받았던 경험이 조용히 반복되고, 삶은 점점 살아내는 것보다 버텨내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

치유는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관계를 맺는 데서 시작된다

내면 아이 작업의 핵심은 감정을 없애는 데 있지 않다. 강한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이 지금의 사건만이 아니라 더 오래된 감정 층과 연결돼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서 시작한다. 예를 들어 답장이 늦어졌을 때 유난히 불안하다면, “지금 내 안에서 더 어린 감정이 반응하고 있구나”라고 조용히 인식해보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순간 가슴이 조여 오고, 배가 내려앉고, 숨이 가빠지는 식으로 몸이 먼저 반응할 수도 있다. 내면 아이는 생각보다 몸을 통해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다음에는 감정을 설명하려 하기보다, 그 감정이 몇 살쯤의 나처럼 느껴지는지 묻는 방식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 나는 몇 살처럼 느껴지지?”라는 질문은 정확한 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와 과거의 감정이 뒤엉키는 순간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 주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지금의 어른인 내가, 예전의 어린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곁에 머물 가능성이 생긴다.

[사진=AI 생성 이미지]

실제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것은 ‘내 안의 아이’와 ‘지금의 어른’을 구분해 보는 연습이다. 가령 마음속으로 “한 부분은 지금 아주 무섭고, 다른 한 부분은 내가 지금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어”라고 말해볼 수 있다. 그런 다음 발바닥 감각을 느끼고, 주변 사물을 천천히 바라보고, 호흡을 길게 내쉬면서 현재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압도되지 않도록 양을 조절하는 방식에 가깝다.

내면 아이와의 관계를 더 깊게 만드는 방식으로 글쓰기도 권한다. 조용한 시간에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직접 편지를 쓰는 것이다. 무서웠던 순간, 혼자라고 느꼈던 순간, 괜찮은 척해야 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때 진짜 듣고 싶었던 말로 써보는 방식이다. 먼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고, 그 감정이 왜 자연스러웠는지 인정해 주고, 마지막에는 지금의 내가 예전의 나에게 건네는 안심의 말을 써볼 수 있다. 이런 작업은 과거를 지우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과 감정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주는 데 의미가 있다.

내면 아이를 다루는 일은 반복되는 감정 반응을 더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언어와 같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완전히 없애는 일은 어렵더라도, 그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무조건 휩쓸리거나 무조건 억누르는 대신, 지금의 내가 그 감정 곁에 조금 더 안정적으로 머무를 수 있다면 이미 변화는 시작된 셈이다. 그렇게 될 때 사람은 완벽해지지는 않더라도, 덜 두려워하고, 자기 비난을 덜 하며, 타인과 더 깊게 연결될 수 있게 된다.

성치훈 기자/ hello@sciencewave.kr

출처: Psyche, “How to reconnect with your inner 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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