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4세기, 파라오 아케나텐이 건설한 도시 아마르나(Amarna)는 단 한 세대 동안 번영했다가 급격히 사라진 역사의 무대였다. 이곳에서 발굴된 어린 소의 발가락뼈 하나가 최근 고고학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장식품이나 공예품으로 보기 어려운 이 뼈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 실험 복원 결과 날카롭고 큰 휘파람 소리가 났다.
약 3,300년 전 이집트의 공기를 가르던 이 소리는 왕실의 화려한 음악이 아닌, 노동자나 경비병이 사용한 일상의 신호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연구는 케임브리지대 아마르나 프로젝트(Amarna Project)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연구에는 미셸 랭리(그리피스대), 안나 스티븐스(케임브리지대), 크리스토퍼 스팀슨(옥스퍼드대 자연사박물관)이 참여했으며, 성과는 국제 학술지성과는 국제 학술지 International Journal of Osteoarchaeology(국제 고고학적 골학 저널, 2025년)에 「A bone whistle from Amarna: sound-making in everyday ancient Egypt」(아마르나에서 발견된 뼈 피리: 고대 이집트 일상에서의 소리 도구)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사진=Langley et al., International Journal of Osteoarchaeology (2025)]
노동자 마을에서 드러난 신호 도구
뼈 피리(휘파람 도구)는 왕실 묘역을 짓던 노동자들이 거주한 ‘스톤 빌리지(Stone Village)’의 경비 건물 내부에서 출토됐다. 아마르나는 왕실 중심부에서 떨어진 외곽 지역에도 노동자 집단 거주지가 형성돼 있었고, 이곳은 외부와의 접촉을 엄격히 통제하는 경비 체계로 둘러싸여 있었다. 출토 지점은 순찰이나 검문을 맡던 관리인의 숙소 혹은 보관 창고로 추정되며, 그곳에서 발견된 유일한 유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진=Langley et al., International Journal of Osteoarchaeology (2025)]
출토된 뼈는 어린 소의 발가락뼈로, 일반적으로 장식품·놀이 도구·손잡이·작은 조각상 제작에 널리 사용됐다. 그러나 아마르나의 뼈에는 그러한 용도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대신 구멍을 뚫을 때 생긴 미세한 드릴 자국과 사용 과정에서 남은 마모 흔적이 뚜렷했다. 연구팀은 동일한 뼈를 가공해 실험 복원을 진행했으며, 입술에 대고 불자 짧고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소리는 예상보다 강했고, 상당한 거리에서도 분명하게 전달됐다.
이러한 특성은 뼈가 단순한 놀이 기구가 아니라 실제로 공동체 안에서 경고나 호출에 활용된 신호 도구였음을 보여준다. 출입과 이동이 통제된 마을의 상황을 고려하면, 날카로운 음향은 경계와 질서를 유지하는 실용적 수단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왕실의 화려한 악기들이 의례와 연회의 일부였다면, 이 뼈 피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현장에서 기능을 담당한 도구였다.
일상 유물이 남긴 의미
고대 이집트의 음악은 하프, 라일, 드럼 같은 복잡한 악기를 중심으로 기록돼 왔다. 그러나 이번 발견은 기록에서 빠져 있던 생활 속 소리 도구의 존재를 드러냈다. 흰개미 흔적과 표면 마모가 남은 작은 뼈 조각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고대 사회의 중요한 일부였음을 알려준다.
연구진은 아마르나의 뼈 피리가 고대 이집트의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를 탐구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라 보고, 앞으로 다른 발굴 유물들도 재검토해 일상 속 소리와 신호 문화를 밝혀낼 계획이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참조 논문: Michelle C. Langley et al, First Identification of Bone Whistle‐Use in Dynastic Egypt, International Journal of Osteoarchaeology (2025). DOI: 10.1002/oa.7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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