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로미어, 노화의 생체시계···멈추는 방법이 있다

Photo of author

By 사이언스웨이브

하루 6시간도 채 못 자고, 끼니는 대충 때우며 카페인에 의존해 버티는 50대 직장인 A씨. 운동은 늘 작심삼일이고, 주말엔 소파에 누워 TV만 본다. 업무는 여전히 바쁘지만, 언젠가부터 회의 내용을 자주 메모하게 됐고, 동료 이름이 금방 떠오르지 않아 당황한 적도 있다.

60대 주부 B씨는 며칠 전 했던 말이 흐릿해져 가족들 앞에서 민망했던 경험을 떠올린다. 나이 들면 다 그렇다며 웃어넘기지만, 가끔 뉴스에서 나오는 치매 이야기엔 유독 귀가 쏠린다. 건강 프로그램을 챙겨보기도 하고, 기억력 개선 영양제에 관심이 간다.

이처럼 중년 이후부터 시작되는 인지 변화는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최근 연구들은 그 이면에 ‘텔로미어(telomere)’라는 세포 속 구조물이 핵심 역할을 한다고 본다. 텔로미어는 세포의 염색체 말단에 붙어 있는 일종의 ‘보호 캡’ 같은 구조로,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조금씩 닳아 짧아진다.

이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텔로미어의 길이가 세포의 수명, 나아가 생물학적 노화의 속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텔로미어가 짧다는 건 그만큼 세포가 반복적으로 분열했고, 노화가 진행됐다는 신호다. 특히 뇌세포처럼 재생이 제한적인 조직에서는 텔로미어가 짧아질수록 기능 저하나 질병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텔로미어를 노화의 분자적 시계라 부르기도 한다.

텔로미어는 뇌 건강의 분자적 시계

하버드 의대 연구진은 중년 이후 나타나는 인지 기능 저하와 관련해 ‘텔로미어’라는 세포 내 구조에 주목했다.

연구진은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에 등록된 성인 35만6천여 명(평균 연령 56세)을 대상으로, 백혈구의 텔로미어 길이와 주요 뇌질환 발생률 사이의 관계를 7년간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텔로미어가 짧은 사람은 긴 사람보다 치매 발생 위험이 19%, 노년기 우울증은 14%, 뇌졸중은 8%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나이, 고혈압, 흡연 등 기존의 주요 위험 요인을 모두 고려한 뒤에도 여전히 통계적으로 유의미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끝을 보호하는 생물학적 캡이다. 세포 분열이 반복될수록 점점 짧아지며, 노화와 연관된 여러 질환의 단서를 제공한다.

텔로미어보다 강력한 변수는 생활습관

하지만 텔로미어의 길이가 곧 뇌질환을 결정짓는 운명은 아니다.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결과는, 같은 텔로미어 길이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생활습관에 따라 뇌 질환의 발생 위험이 뚜렷하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체중, 음주, 수면, 운동, 식단 등 5가지 건강 요소를 반영한 ‘맥캔스 뇌 건강 점수(BCS)’를 기준으로 참가자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텔로미어가 짧더라도 생활습관 점수가 높은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뇌질환 위험이 크게 낮았다. 특히, 체중을 정상 범위로 유지하고, 일주일에 150분 이상 유산소 운동을 하며, 채소와 통곡물이 중심인 식단을 실천한 사람들에겐 치매·우울증·뇌졸중의 발병률 증가가 관찰되지 않았다.

연구 제1저자인 타마라 킴벌 박사는 “텔로미어가 짧다고 해서 게임이 끝난 것은 아니다”라며, “생활습관은 뇌 건강을 되돌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체중 관리나 절주, 수면과 같은 기본적인 습관을 통해 노화로 인한 뇌질환 위험을 충분히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 핵심 요약

항목내용
분석 대상영국 UK Biobank 등록자 356,173명 (평균 56세)
추적 기간7년간 3개 뇌질환 추적 (치매, 우울증, 뇌졸중)
주요 변수백혈구 텔로미어 길이 + 생활습관 점수 (BCS)
주요 결과텔로미어 짧으면 뇌질환 위험 ↑ (최대 +19%)
예외건강한 생활습관 그룹에서는 위험 증가 없음

뇌 노화 늦추는 생활습관 5가지

생활습관 항목실천 기준 및 효과 설명
정상 체중 유지BMI 18.5~24.9 유지 시 노화 속도 완화
절주 또는 금주주 1회 이하 음주, 세포 손상 유발 억제
충분한 수면 확보7시간 이상 수면, 텔로미어 단축 속도 감소
규칙적 유산소 운동주 150분 이상 걷기, 염증 억제 및 뇌 혈류 개선
건강한 식단채소·통곡물 위주, 항산화물질로 DNA 보호

뇌 건강은 지금부터

뇌 건강의 시계를 되돌릴 수 있다는 점은 중장년들에게 희소식이다.

미국신경학회(AAN) 자문위원도 “치매는 노년에 갑자기 생기는 병이 아니라, 중년 시기의 생활습관이 20~30년 후 뇌 건강을 좌우하는 변수”라고 말했다. 젊을 때부터의 관리가 중요하지만, 이미 노화 징후가 나타난 경우에도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텔로미어는 생물학적 노화 수준을 반영하는 유용한 바이오마커지만, 그 자체가 질병을 직접 예고하는 결정적 지표는 아니다. 이번 대규모 연구는 짧은 텔로미어와 뇌졸중, 치매, 우울증 발생 위험 간의 통계적 상관성을 제시했지만, 동시에 생활습관이 이러한 위험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을 함께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항산화 식품 섭취와 규칙적인 운동이 텔로미어 보호에 실제로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기존 연구들과도 일치한다는 것이다. 과일, 채소, 통곡물, 견과류 등 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식단은 세포 내 산화 스트레스를 줄여 DNA 손상과 텔로미어 단축 속도를 늦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더해, 주 150분 이상 중등도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실천하면, 염증 반응을 낮추고 텔로머레이스(텔로미어 복원 효소)의 활성이 증가해 텔로미어 유지에 도움을 준다. 실제로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는 체중 조절, 스트레스 관리, 고혈압 예방이 텔로미어 길이와 직결된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Science Wave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1 thought on “텔로미어, 노화의 생체시계···멈추는 방법이 있다”

댓글 남기기

Science Wave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