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신경축 불균형이 주요 우울장애 핵심 가능성 제시
우울증이 마음속 문제나 뇌의 화학적 불균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결정적 증거가 제시됐다. 국내 연구진이 비전형 우울장애 환자에서 전신 면역 반응의 과도한 활성과 신경 기능의 불균형이 동시에 관찰됐음을 밝혀낸 것이다. 감정 변화의 뒤에 숨겨져 있던 생물학적 회로를 확인함으로써 향후 새로운 치료 전략 개발의 근거가 마련됐다.
우울증, 면역-신경 축의 붕괴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진주 교수와 인하대학교 김양식 교수 공동 연구팀은 비전형 양상과 정신증상을 보이는 젊은 여성 우울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혈액 단백질 분석, 백혈구 단일세포 전사체 분석, 환자 혈액 기반 유도줄기세포(iPSC)로 제작한 뇌 오가노이드 분석을 통합한 멀티-오믹스 연구를 수행했다.
분석 결과 환자군에서는 신경세포 간 신호 전달에 관여하는 단백질 발현이 정상보다 크게 증가해 있었으며, 강한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보체 단백질 C5 수준도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이는 뇌 기능과 면역 체계가 동시에 과활성화되어 균형이 무너진 상태가 우울 증상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염증 반응을 쉽게 촉발하도록 만드는 유전적 변화도 확인됐다. 우울증이 단순한 감정 저하나 신경전달물질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전신 수준의 염증·면역 이상과 긴밀히 연관된 생물학적 질환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에 지난달 31일 게재됐다.

[자료=KAIST·인하대 공동 연구팀, Advanced Science 제공]
국내 우울증 현황과 치료 현실
국내에서 우울증 진료 인원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2017년 약 69만 명에서 2021년 93만 명으로 35%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20대 환자는 127% 증가해 가장 가파른 상승을 보였고, 전체 환자의 약 68%는 여성으로 남성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우울증 진료비 총액도 2017년 3천억 원대에서 2021년 5천억 원대로 70%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치료 접근성과 효과 측면에서는 여전히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우울증 치료율은 OECD 국가 평균보다 낮으며, 치료 중단률은 높은 것으로 보고된다. 특히 전체 환자의 약 40%는 여러 항우울제에도 반응하지 않는 치료저항성 우울증 범주에 속한다. 이 경우 증상 재발 가능성이 높고 만성화 위험도 커진다.
이러한 현실은 우울증이 개인 감정 조절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보건 체계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질환이라는 요구를 강화하고 있다.

치료 전략의 전환 가능성
그동안 우울증 치료는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 등 신경전달물질 조절에 기반한 약물 치료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면역 활성과 염증 반응의 정도에 따라 환자군이 구분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면역 기반 생체지표를 활용한 정밀의학 접근 가능성을 제시했다.
앞으로는 면역·염증 조절 약물, 항염증 식이나 규칙적 운동 등 생활요법, 약물·심리치료·면역조절을 결합한 맞춤형 복합 치료 전략 등 새로운 치료 모델이 논의될 전망이다. 우울증을 단순히 뇌 속 문제로 보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몸 전체의 신호 조절 실패로 이해하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한진주 교수는 이번 성과가 우울증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향후 생체지표 기반 환자 분류와 신약 개발이 활발하게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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