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수술실에서만 쓰여야 할 전신마취제가 전자담배 액상에 섞여 불법 유통되면서 청소년과 일반인에게까지 퍼지고 있다.
일명 ‘좀비 담배’라 불리는 이 전자담배는, 의료용 마취 유도제 에토미데이트(etomidate)를 액상에 혼합해 흡입하는 형태로, 사용자가 의식을 잃고 휘청거리며 걷는 모습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의료진 관리하에 정맥으로만 투여되는 전문의약품이지만, 전자담배라는 외형으로 변조되며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다.
급성 진정 기억 소거···의료인 중독 사례도
에토미데이트는 뇌의 GABA 수용체에 작용해 신경 활동을 억제하고 의식을 끊으며, 이 과정에서 급성 진정과 기억 소거 효과가 나타나 반복 사용 시 정신적 의존성이 형성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는 강한 쾌감이나 탐닉성이 적다고 여겨졌지만, 반복 투여에서는 금단과 내성이 보고됐고, 특히 전자담배처럼 즉각 효과가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방식은 사용자가 효과를 재추구하게 만들어 습관적 사용과 남용, 의존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의료인이 자가 투여하다 중독된 사례가 보고됐고, 최근 전자담배 혼입 사례에서도 며칠 간격으로 반복 흡입하며 강한 졸림과 이탈감에 의존하는 전형적 중독 패턴이 확인됐다. 니코틴이나 오피오이드보다는 낮지만 프로포폴과 유사하거나 그 이상의 위험군으로 평가되며, 부신 억제·저칼륨혈증·경련 같은 생리적 위해가 겹쳐 중독성 자체보다 한 번의 사용이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국내도 안전지대 아냐···아시아 전역 문제로 떠올라
국내에서도 적발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2025년 7월, 국가정보원과 말레이시아 수사당국은 에토미데이트와 코카인이 혼합된 전자담배 카트리지 수백만 회분의 국내 반입 시도를 사전에 차단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서울경찰청이 강남 일대 유흥업소에 카트리지를 공급한 일당 10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홍콩에서 원액을 밀수입해 987개의 카트리지를 제조·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직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8월 12일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로 지정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했으며, 공포 6개월 후부터는 수입·유통·투약 전 과정이 전면 관리 대상이 된다.
해외에서도 규제가 빠르게 강화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25년 5월 에토미데이트를 소지·사용 금지 의약품으로 지정하고 전국 학교에 경고문을 발송했다.
싱가포르는 7월 압수 전자담배의 3분의 1에서 에토미데이트가 검출됐다고 발표하며, 9월부터 이를 임시 마약류로 재분류하고 사용자 강제 재활과 공급자 중형을 동시에 도입했다. 홍콩 역시 ‘스페이스 오일’ 문제에 대응해 2025년부터 에토미데이트를 위험약물(Dangerous Drug) 목록에 포함시켰고 인도네시아와 태국 등 동남아 전역에서도 검출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의료용 마취제가 전자담배라는 외형으로 포장돼 생활용품처럼 유통되는 현상을 “전례 없는 공중보건 위협”으로 경고한다. 규제는 잇따르고 있지만 이미 불법 시장에 퍼진 액상의 규모와 유통망은 파악조차 어렵다. 공항·항만 액상 검사, 온라인 판매 차단, 유흥업소 불시 단속, 청소년 대상 예방 교육이 동시에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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