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LA 코리아타운에서는 멕시코의 월드컵 경기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수천 명이 거리로 몰려 나온 가운데 군중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하고 총성이 울리면서 한 남성이 다리에 총상을 입는 사건이 벌어졌다. 축구 경기나 정치 집회, 거리 축제처럼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모일 때 감정이 급격하게 증폭되는 현상은 오래전부터 ‘군중심리’라는 이름으로 설명돼 왔는데, 최근 심리학 연구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군중심리에 대한 통념이 상당 부분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군중은 정말 이성을 잃을까
오랫동안 군중은 개인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폭력성을 증폭시키는 존재로 묘사돼 왔다. 프랑스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은 1895년 출간한 『군중』에서 사람이 군중 속에 들어가면 독립적인 판단 능력을 잃고 충동적인 행동에 휩쓸린다고 주장했다. 이후 이 이론은 정치권과 언론, 대중문화 전반에 퍼지면서 군중을 위험하고 비이성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의 토대가 됐다.
그러나 현대 군중심리학 연구자들은 이러한 설명이 과학적 근거보다 당시 사회 엘리트들의 불안과 편견을 반영한 측면이 크다고 지적한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의 스티븐 라이셔와 영국 키일대의 클리퍼드 스토트 등 연구자들은 다양한 시위와 집회, 스포츠 행사에 대한 현장 연구를 통해 군중이 반드시 폭력이나 무질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오히려 사람들은 같은 가치관과 목표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강한 소속감과 자신감, 연대감을 경험한다. 축구 경기장의 응원 문화와 음악 축제, 평화적인 시위 현장에서 참가자들이 느끼는 열정과 유대감 역시 이런 과정에서 형성된다. 연구자들은 군중이 개인성을 지워버리는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공간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군중이 아니라 목적과 환경
물론 모든 군중이 긍정적인 결과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인종주의 폭동이나 극단주의 정치 집회, 폭력 시위 역시 군중 속에서 발생해 왔다. 하지만 최근 연구자들은 이런 사건을 단순히 “군중이 미쳐서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고 말한다.
폭력 행위는 대부분 특정한 신념과 목표, 조직적인 행동이 결합해 나타난다. 따라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군중 전체를 비난하기보다 어떤 사회적·정치적 배경이 있었는지, 누가 행동을 주도했는지, 어떤 목적을 갖고 움직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권력을 가진 집단은 자신들에게 불편한 시위나 집회를 ‘폭도’나 ‘무리’로 규정하며 정당성을 약화시키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현대 군중심리학은 군중을 하나의 획일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 모인 사람들 안에도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 동기가 존재하며, 이러한 복잡성을 이해하는 것이 민주주의와 시민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연구자들은 설명한다.
성치훈 기자 / hello@sciencewave.kr
출처: The Guardian, “Why our ideas about protest and mob psychology are dangerously w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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