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계에는 적을 만나거나 먹이를 사냥할 때, 맹독을 주입해 단시간에 상대를 마비시키는 생물이 많다. 이런 독성 물질을 통틀어 동물독소(zootoxin)라 한다. 대표적인 예가 뱀의 독이며, 그중 프레리방울뱀은 인간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히는 종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과학자들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뱀의 독을 무력화할 수 있는 새로운 항독 단백질을 합성하는 데 성공하면서, 인류의 오랜 과제였던 ‘독사 해독제 개발’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다양한 동물의 독, 생존을 위한 무기
자연계의 독은 단순한 공격 수단이 아니라 생존 전략의 결과다. 벌 종류는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를 만나면 꼬리의 독침으로 상대의 피부를 찌르고 독액을 주입한다. 주입 즉시 통증과 염증이 발생하고, 체내 면역 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면 호흡정지나 쇼크로 이어질 수도 있다. 특히 말벌의 독은 신경과 근육을 동시에 마비시켜, 체질에 따라 치명적일 수 있다.
독해파리 역시 위험하다. 몸에서 길게 뻗은 촉수에는 수백만 개의 가시세포가 있어, 닿는 순간 강력한 독액이 분비된다. 쏘인 사람은 불에 덴 듯한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해파리의 종류에 따라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필리핀에서는 매년 수십 명이 해파리에 쏘여 목숨을 잃는다. 응급 조치로는 식초를 바르면 독소가 어느 정도 중화된다.



해양에는 침가오리(stingray)처럼 꼬리에 독침을 가진 어류도 있다. 이들은 주로 바닥에 몸을 숨기며 사람을 공격하지 않지만, 밟히면 반사적으로 꼬리의 톱니 모양 독가시로 찌른다. 이때 주입되는 독소는 근육을 손상시키고, 출혈·호흡곤란·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 2006년 이후 치명적인 사례는 거의 보고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강한 독성을 지닌 위험한 종이다.
가장 치명적인 동물, 독사
현재까지 알려진 독사만 약 600종에 달한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약 10만 명이 독사에 물려 사망한다. 독사는 인류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히는 맹독 동물이라 할 수 있다.
독사는 눈 아래쪽에 독샘을 가지고 있으며, 이곳에서 생성된 독액은 독니를 통해 주입되거나 일부 종에서는 전방으로 분사되기도 한다. 독성분은 20여 가지 이상의 단백질과 폴리펩타이드, 그리고 각종 효소로 구성되어 있다. 이 독들은 먹이를 제압하고 소화시키는 데 쓰이며, 생화학적 작용이 매우 다양하다.

독액 중 신경독은 신경과 근육 간의 신호 전달을 차단해 전신 마비를 일으키고, 혈액독은 혈압을 급격히 떨어뜨리거나 혈액 응고를 방해해 심각한 출혈을 유발한다. 또한 조직분해 효소는 먹이를 내부에서부터 분해해 소화 과정에 도움을 준다. 이런 복합 독성 덕분에 독사는 사냥 효율이 높지만, 인간에게는 즉각적인 응급조치 없이는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다.

기존 항독소의 한계
독사 피해를 줄이기 위한 항독소(antivenom)는 19세기 말부터 개발돼 왔다. 원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말이나 양 같은 대형 동물에 소량의 뱀독을 주입해 항체를 형성시키고, 그 동물의 혈청에서 항체를 추출해 사람에게 주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전통적인 방법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며, 생산 효율이 낮다. 또한 항체의 구성 성분이 사람의 면역계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아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뱀 종마다 독의 조성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독에 대응하는 범용 항독소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AI가 설계한 새로운 해독 단백질
덴마크 공과대학의 의공학자 티모시 젠킨스(Timothy Jenkins)는 오랫동안 독사 해독제 연구를 이어왔다. 2022년 그는 워싱턴대학교의 생화학자 데이비드 베이커(David Baker)를 만나, 인공지능을 이용한 단백질 설계 연구에 대해 듣게 된다. 베이커는 생성형 AI가 기존 단백질 구조를 학습해 전혀 새로운 기능을 가진 합성 단백질을 설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젠킨스는 이 아이디어를 독사 해독제에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베이커와 함께 ‘RFdiffusion’이라는 생성형 AI 모델을 이용해 뱀독의 주요 독성 단백질을 분해·무력화할 수 있는 합성 단백질을 설계했다. 이 AI는 수천 가지 단백질 구조를 시뮬레이션한 뒤, 독성 물질과 선택적으로 결합해 작용을 차단할 수 있는 단백질 형태를 도출했다.
동물 실험에서 확인된 해독 효과
두 과학자는 AI가 설계한 단백질을 실험실에서 합성하고, 실제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동물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쥐에게 치사량의 코브라 독을 주입한 뒤, 즉시 또는 15분 후에 합성 항독 단백질을 투여했다. 놀랍게도 두 경우 모두 쥐들이 회복 반응을 보이며 생존했다.
이 결과는 기존 항독소보다 훨씬 빠르고 안정적인 해독 효과를 보여주었다. AI가 설계한 단백질은 독성 효소의 활성 부위에 직접 결합해 작용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항체보다 반응 속도가 빠르고 열 안정성도 높았다. 즉, 저온 저장이 어렵던 기존 항독소의 단점을 해결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인류의 새로운 무기, AI 항독 단백질
이 연구 결과는 2025년 1월 15일 자 《네이처(Nature)》에 게재되었다. 현재 연구팀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을 준비 중이다. AI가 설계한 항독 단백질이 사람에게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작용한다면, 향후 전 세계에서 매년 수십만 명의 생명을 구하는 혁신적인 치료제로 자리 잡을 것이다.
독은 오랜 세월 생명의 위협이었지만, 이제 인공지능이 그 치명적인 생화학 무기를 되돌려 인류의 방패로 삼고 있다. ‘AI 합성 항독 단백질’은 자연의 독성을 이성으로 해독하려는 인간 과학의 가장 현대적인 응답이다.
참고 문헌: S. Vázquez Torreset al. De novodesigned proteins neutralize lethal snake venom toxins. Nature. Published online January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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