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과학] 생명은 혼자 진화하지 않는다···공진화, 관계 속에서 진화한 생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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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웨이브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은 꽃식물(현화식물)과 그 수분 매개자인 곤충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해왔다는 점에 주목했고, 이를 ‘진화적 상호작용’이라 표현했다. 이 개념은 오늘날 공진화(coevolution)라는 이름으로 정립되었고, 특정 종들이 서로를 선택 압력으로 삼으며 상호 적응적 변화를 겪는 과정을 일컫는다. 꽃식물과 곤충 사이의 관계는 상호의존적 공진화(mutualistic coevolution)의 대표 사례로 연구되어 왔다. 다음은 그 외 다양한 공진화 사례들을 소개한다.

나비, 벌, 나방, 개미, 딱정벌레 등은 꽃식물로부터 꿀과 영양을 얻으면서 꽃가루를 수정해주는 공진화를 해왔다.

아카시아와 아카시아개미, 방어와 서식처의 교환

곤충과 고등식물은 약 4억 8천만 년 전 데본기(Devonian) 이후 함께 진화해왔다. 다윈의 이론 이후, 과학자들은 생물 간 상호작용 속에서 진화한 짝들을 탐색해왔다. 1960년대에는 중앙아메리카의 아카시아나무와, 그 가지에 돋아 있는 소뿔 모양의 큰 가시 속에 서식하는 아카시아개미(Pseudomyrmex)의 방어적 공진화 사례가 보고됐다.

아카시아나무 가지에 솟아나는 큰 가시 속에는 아카시아개미가 구멍을 파고 들어가 내부에 산란을 하고 함께 공생한다. 둘 사이의 관계를 보면, 아카시아나무는 여왕개미에게 안전하게 지낼 공간을 제공하는 동시에, 부화한 개미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영양가 있는 수액을 제공한다. 덕분에 아카시아개미의 유충은 가시 속에서 안전하게 성체로 자랄 수 있다.

아카시아나무는 개미에게 단백질과 당을 공급하는 구조물을 제공하며, 개미는 나무를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 초식동물의 몸에 붙어 공격하거나, 주변에 싹이 트는 경쟁 식물의 새순을 잘라내면서 아카시아의 생존 확률을 높인다. 이는 수분이 아닌 서식 공간과 생존 경쟁에 영향을 주는 형태의 공진화로, 곤충과 식물 간 상호작용이 얼마나 다양한 전략으로 진화했는지를 보여준다.

아카시아나무의 가시는 쇠뿔처럼 크고 단단하다.

오프리스난과 스콜리드 야생벌의 공진화

오스프리난(Ophrys)은 스콜리드 야생벌(scoliid wasp)의 암컷 모습과 흡사하다.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단독생활을 하는 스콜리드 야생벌의 수컷은 마치 암컷처럼 생긴 오프리스난의 꽃에 접근했다가 수분을 돕게 된다. 스콜리드와 오프리스는 독특한 공생 방법으로 공진화해왔다.

유카와 유카나방, 배타적 생식의 상호 의존

유카나무와 유카나방의 관계는 한층 정교하다. 유카나방은 암꽃의 자방에 알을 낳는 동시에 꽃가루를 직접 암술머리에 묻혀 수분을 유도한다. 유카나무는 오직 이 특정 종의 나방을 통해서만 번식할 수 있으며, 나방 애벌레는 자방 내부에서 일부 씨앗을 먹고 자란다. 양쪽 모두의 생식이 상대 종에 의존하는 이 관계는 절대적 공진화(obligate mutualism)라 불린다.

유카나무는 나방 애벌레가 지나치게 많은 씨앗을 소비할 경우, 해당 자방을 낙과시켜 스스로 균형을 조절하는 생리적 기제를 갖고 있다. 이는 공진화가 단순한 협력 구조가 아니라, 상호 견제와 진화적 안정성까지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북미대륙에 사는 유카라는 식물은 매마른 사막에 살기 때문에 수분해줄 곤충이 거의 없다. 그러나 ‘유카나방’이라는 나방이 유카의 씨를 먹으려고 찾아왔다가 수분이 이루어진다.

유카의 꽃가루는 매우 끈적거리기 때문에 찾아온 나방의 다리와 날개에 잘 붙는다. 꽃가루는 나방이 다른 유카 꽃에 앉았을 때 타화수분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벌새와 조매화의 공진화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 주로 사는 꽃꿀을 먹고 사는 벌새 종류는 375종이나 알려져 있다.

이 벌새 종류는 조매화(ornithophilous)라 불리는 꽃의 꿀샘에 부리를 넣어 꿀을 빠는 동안 수분이 이루어지게 된다. 조매화는 벌새가 꿀을 빨아먹기 좋은 꿀샘 구조를 하고 있다.

무화과와 무화과좀벌, 종 맞춤형 진화의 정점

무화과(Ficus)와 무화과좀벌(Blastophaga psenes)은 더욱 복잡한 공진화의 사례다. 무화과는 꽃이 열매 안쪽에 숨어 있으며, 벌은 좁은 입구를 통해 내부로 들어가 꽃가루를 매개하고 알을 낳는다. 전 세계에 약 800여 종이 존재하는 무화과는 대부분 고유의 수분 파트너 곤충 종을 갖고 있으며, 이를 종 특이적 공진화(species-specific coevolution)라 한다.

각 무화과 종은 자웅 구조, 꽃의 배치, 번식 시기 등에서 고유한 진화 경로를 거쳤고, 이는 특정 곤충 종과의 장기간 진화적 상호작용의 결과다. 수분, 산란, 번식이 하나의 닫힌 생태적 시스템 내에서 진행되며, 양쪽 모두가 상대 종의 존재 없이는 생식 자체가 불가능한 단계에 이르렀다.

무화과 속에는 수없이 많은 암술이 있고, 수정된 암술은 다수의 씨를 맺는다. 내부의 붉은색 조직이 모두 암꽃이다.

무화과좀벌은 길이가 2mm 정도인 작은 벌이며, 독거생활을 하고 집이 따로 없다. 재배종 무화과가 자라는 곳에는 어디나 이 벌이 산다. 수컷에는 날개가 없다.

우리나라 전역에 많이 자라는 밀원식물로 유명한 ‘아카시아’의 바른 이름은 ‘아까시나무’이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인 아까시나무(black locust, Robina pseudoacacis)는 번식력이 매우 좋아 우리나라에서는 조림용으로 1900년대 초부터 도입했다. 아까시나무는 아카시아나무(Acacia sensui lato) 처럼 가지에 굵은 가시가 있고, 같은 콩과식물이지만 종이 다르다. 아카시아나무 종류는 중남미와 오스트랄리안(오스트레일리아, 기니아, 말레이시아 인근 지역)에 많이 자라며, 1,300여종이 알려져 있다.

인간과 작물, 유도된 공진화의 예외

콩과식물 뿌리에 공생하는 뿌리혹박테리아, 흰개미 장 속의 섬유분해 미생물 등은 생물학적 공진화의 전형적인 사례다. 그러나 인간이 병충해에 강한 품종을 선택적으로 육종하여 재배하는 과정은 자연 선택과는 구분되는 인위적 선택에 기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환경의 일부로 기능하며 특정 유전형의 보존과 확산을 주도한 점에서 이 관계는 사회생태적 공진화(socio-ecological coevolution)의 한 양상으로 볼 수 있다. 식량 작물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은 자연적 공진화에 비해 덜 자율적이지만, 그 진화적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진화의 단위는 ‘관계’

진화는 개별 생명체의 변화가 아니라, 그 생명체가 속한 관계망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의 결과다. 공진화는 그 상호작용이 단순한 영향을 넘어, 서로를 선택 압력으로 삼아 구조적 변화를 유도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생물은 환경에 적응할 뿐만 아니라, 서로의 생존 조건이 되며 환경 자체를 만들어낸다. 식물의 형태, 곤충의 행동, 미생물의 대사경로까지—그 어느 것도 고립된 진화의 결과가 아니다. 공진화는 진화의 단위를 개체에서 관계로 확장하는 개념이며, 생명체 간 연결성의 밀도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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