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과학] 꽃은 곤충의 날갯짓을 듣는다···생물음향학이 밝혀낸 감각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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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웨이브

음향학(acoustics)은 소리를 다루는 물리학의 한 분야다. 이 능력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며, 다양한 동물도 놀라운 방식으로 소리를 내고 듣는 능력을 진화시켜왔다. 실제로 많은 동물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청각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동물뿐 아니라 식물도 소리에 반응한다는 연구들이 나오면서, 동식물의 발성과 청음을 탐구하는 생물음향학(bioacoustics)이 주목받고 있다.

생물음향학은 박쥐나 곤충 같은 육상 동물뿐 아니라, 수중 음파 탐지(소나) 기술의 발전과 함께 고래 같은 해양 생물, 수산업에서 중요한 어류까지 연구 대상으로 넓어지고 있다. 이 학문은 고대 인류가 맹수의 울음소리나 사냥감의 움직임을 소리로 감지하던 생존 본능에서 시작됐다고도 볼 수 있다.

1920년대, 곤충 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 장비가 등장한 이후 생물음향학은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빛이 닿기 힘든 수중 환경에서, 소리는 시각을 대신해 널리 퍼지는 감각 도구로 기능하며, 고래를 비롯한 해양 생물들은 이 능력을 활용해 소통한다. 1950~60년대에 박쥐와 돌고래의 생태가 본격적으로 밝혀진 것도, 바로 이러한 기술적 진전 덕분이다.

꿀벌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곤충은 꽃잎 속으로 머리를 디밀고 꿀을 빠는 동안 꽃가루받이가 잘 되도록 해준다.

허리가 잘록한 이 말벌 종류는 꽃 아래 씨방의 꿀샘에 직접 구멍을 내어 꿀을 훔치고 있다.

벌 소리를 듣고 꿀 생산을 조절하는 꽃

꽃이 피면 어디선가 벌과 나비가 어김없이 날아든다. 2025년 5월 21일,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미국음향학회 정기 발표회에서 이탈리아·스페인·호주의 연구진이 공동으로 진행한 벌과 꽃의 소리 상호작용 실험이 발표됐다.

이탈리아 튜린대의 곤충학자 프란체스카 바르베로 교수는, 금어초에 찾아오는 곤충 43종을 관찰하며 이들이 꽃에서 꿀을 빠는 시간과 행동을 비교했다. 곤충이 꽃 속에서 오래 머물수록 꽃가루받이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씨앗 생성에도 유리하다.

대부분의 곤충은 꽃잎 안으로 들어가 꿀샘에서 꿀을 섭취했다. 그러나 일부 말벌과 호박벌은 꽃을 뚫고 들어가지 않고, 씨방 근처에 구멍을 내고 꿀만 빼먹었다. 이런 경우에는 꽃가루받이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꽃 입장에서는 ‘도둑’에 가깝다.

바르베로 교수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벌이 내는 소리를 꽃이 들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소리에 따라 반응을 달리할까?” 이 질문을 확인하기 위해, 꿀벌·말벌·호박벌의 날갯짓 소리를 녹음해 스페인과 호주에 있는 음향학자, 식물생리학자 동료들과 공동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에서는 실제 벌을 쓰지 않고 녹음된 소리만 금어초에 들려주었다. 그 결과 꿀벌 소리를 들은 꽃은 당도가 더 높은 꿀을 많이 분비했지만, 꿀만 훔치는 벌의 소리에는 꿀 생산량과 당도가 모두 낮아지는 반응을 보였다.

연구진은 이 현상이 꽃과 매개 곤충 사이에 장기간 진행된 공진화(coevolution)의 결과라고 보았다. 꽃은 소리만으로도 상대가 협력자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고, 그에 따라 생리적 반응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두 가지 실용적 가능성을 제시했다. 하나는 양봉업자가 벌의 소리를 활용해 꿀 생산을 유도하는 기술에 응용할 수 있다는 점, 또 하나는 꿀을 훔치는 곤충의 접근을 억제하는 방법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잎벌레를 퇴치하는 겨자의 매운 성분

겨자는 배추과 식물(Brassica nigra)에서 얻는 기름으로, 특유의 향은 알릴이소티오시안산(allyl isothiocyanide)이라는 물질에서 나온다. 미국 미주리대학의 식물학자 하이디 아펠(Heidi Appel) 교수는, 이 겨자 식물이 애벌레가 잎을 갉는 소리에 반응해 방어 물질인 겨자유를 더 많이 분비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애벌레가 잎을 갉는 진동을 테이프에 녹음한 뒤, 레이저를 비춰 테이프를 통해 전달되는 미세한 떨림을 측정했다. 그 진동은 식물 내부에 전달되어, 겨자유 생성에 영향을 주는 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아펠 교수는 겨자 잎을 갉아먹는 애벌레의 소리를 녹음하는 방법으로 벌레가 붙어 있는 이웃 잎에 작은 테이프를 붙여두었다.

곤충은 약 4억 8천만 년 전 지구에 등장했으며, 그 시기에 육상식물도 함께 출현했다. 이후 이 둘은 서로 영향을 주며 공진화해왔다. 동물 중심의 생물음향학 연구는 많이 이루어졌지만, 식물과 곤충 사이에 오간 소리 기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는 이제 막 걸음마 단계다. 꽃식물이 소리를 감지하는 메커니즘, 그리고 협력과 위협을 구별해 반응하는 방식은 아직 해명되지 않은 생물학적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소리는 감각 이전에 구조다. 식물이 청각 기관 없이도 진동에 반응하고, 특정 파장을 구분한다는 사실은 감각과 인지의 경계를 다시 그린다. 생물음향학은 그 반응의 메커니즘을 해석함으로써, 생명체들이 어떻게 정보를 감지하고 선택적으로 반응하는지를 다룬다. 인간은 이 체계 바깥에 있지 않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진동은 생태계에 도달하고, 생물의 반응은 다시 인간의 환경에 되돌아온다. 감각이 연결된 구조라는 전제 위에서, 생물음향학은 인간이 어떤 존재로 환경에 개입하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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