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대신 주사로 복근을 만드는 시대가 열릴까. 중국의 한 남성이 히알루론산 필러를 대량 주입해 8팩 복근을 인공적으로 조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번 사례는 단순한 미용 시술을 넘어, 인체 구조를 인공적으로 재설계하려는 시도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히알루론산 필러로 만든 ‘8팩’ 복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앤디 하오 티엔난’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중국인 인플루언서는 복부, 어깨, 가슴 부위에 히알루론산 필러를 총 40회 주입하는 데 400만 위안(약 8억 2000만 원)을 사용했다. 그는 “운동만으로는 원하는 체형을 만들 수 없어 인공 복근 시술을 택했다”며 “중국 최초의 인공 복근 시술자”라고 자처했다.
히알루론산은 인체의 피부와 연골, 관절액 등에 존재하는 천연 다당류다. 수분을 끌어당기는 특성 덕분에 피부 주름 개선과 볼륨 보충용 필러로 널리 활용된다. 하지만 복부나 팔, 대퇴부 등 넓은 부위에 대량으로 주입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처럼 근육 형태를 외형적으로 구현하는 시술은 ‘체형 필러(Body Contouring Filler)’로 불리며, 실제 근육을 만들지 않고 시각적 형태만 복제하는 방식이다.
기능이 아닌 형태만 복제하는 인공 근육 시술
히알루론산 필러는 점성이 높은 젤 형태로 피하 지방층에 주입된다. 이 과정에서 피부 아래의 공간을 메워 표면이 도드라져 보이게 되는데, 복근 모양의 윤곽을 따라 주입하면 마치 근육이 있는 듯한 외형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공 복근은 실제 근육과 달리 수축이나 이완 기능이 전혀 없다. 생리학적으로 근육은 미세한 단백질 섬유들이 전기 자극에 반응해 움직이는 동적 조직이지만, 필러는 단순히 ‘채워진 볼륨’에 불과하다. 따라서 운동 시에는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고, 시간이 지나면 형태가 변형될 가능성도 높다.
히알루론산은 생체적 친화성이 높지만, 대량 주입 시 물리적 압력과 면역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체내 수분을 끌어당기는 성질로 인해 주입 부위가 지속적으로 팽창하거나 변형될 수 있으며, 혈관이 압박되면 혈류 장애와 피부 괴사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고용량 필러는 또한 주변 근육을 눌러 조직의 산소 공급을 방해할 수 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압박성 근육 위축(pressure-induced muscle atrophy)이 발생해, 근육이 점차 얇아지고 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 필러가 균등하게 분포되지 않으면 한쪽으로 이동하거나 응집되는 ‘필러 마이그레이션(filler migration)’이 일어나 비대칭 변형을 유발한다.

안전 보장 못해···심각한 이물질 반응 경계해야
의학 논문과 병원 보고 사례에 따르면, 필러 시술 후 발생한 심각한 부작용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202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허벅지 필러 시술을 받은 30대 여성이 시술 부위에 고열과 부종이 생기며 급성 감염이 발생했다. 세균 배양 검사에서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됐고, 절개 배농 수술과 3개월의 항생제 치료가 필요했다.
2019년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복부 필러를 맞은 남성이 시술 후 피부가 검게 변하고 통증을 호소했다. 영상 검사 결과, 필러가 근육층을 압박해 혈류가 차단된 것으로 확인됐으며, 괴사 조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이후 해당 부위의 근육은 비대칭으로 위축됐다.
국내에서도 2023년 대한성형외과학회 학술지에 발표된 보고에 따르면, 얼굴 필러를 반복 주입받은 환자 중 일부에게 이물성 육아종(foreign body granuloma)이 형성됐다. 면역계가 필러를 이물질로 인식해 염증 반응을 일으킨 결과로, 자연 흡수가 불가능해 절제 수술로 제거해야 했다. 전문가들은 복부나 팔처럼 넓은 부위에서는 이런 염증 반응이 더 광범위하게 확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히알루론산이 인체 친화적이라 해도, 합성물질을 대량으로 주입하면 생리적 균형이 무너진다. 체내 면역계가 이를 ‘비정상 축적물’로 인식하면 만성 염증 반응이 이어지고, 섬유화 조직이 생겨 필러 주변이 단단한 결절로 변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자연적으로 해소되기 어렵고, 절제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
또한 필러가 혈류를 방해하면 지방세포가 괴사하면서 지방 괴사(necrosis of adipose tissue)가 발생한다. 괴사 조직이 남아 있으면 염증이 재발하거나 세균 감염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복부나 대퇴부처럼 넓은 조직층은 회복이 더디고 흉터가 남을 확률도 크다.
전문가들은 얼굴용 필러와 달리 대량 체형 필러는 안전성 검증이 부족하다고 경고한다. 체내 흡수 과정이 일정하지 않아 주입 부위가 울퉁불퉁해지거나, 시간이 지나도 필러가 남아 조직 변형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히알루론산 필러는 의료적으로 일시적 볼륨 보충제로 개발된 물질이지, 근육을 대체하거나 체형을 설계하기 위한 재료가 아니다.
복근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시술은 시각적 효과는 줄 수 있지만, 인체의 구조적·생리적 균형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계는 일관되게 경고하고 있다. 미용 기술이 몸의 형태를 다룰 수는 있어도, 몸의 기능을 재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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