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 피부 질환의 원인을 밝히는 연구에서, 면역세포의 이동 능력을 방해하는 특정 유전 변이가 발견되었다. 이 변이는 피부에서 바이러스를 감시해야 할 T세포의 이동을 막아, 인유두종바이러스(Human Papillomaviruses)가 통제되지 않은 채 증식하도록 만든다. 그 결과 피부 사마귀와 비흑색종 피부암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피부 면역 방어를 무너뜨리는 희귀 유전 질환
면역세포는 피부, 폐, 장 같은 조직에 배치되거나 혈액 속을 순환하면서 외부 병원체를 감시하는 ‘생체 파수꾼’ 역할을 한다. 이 세포들이 빠르게 이동해 감염 부위에 도달하는 능력은 우리 몸의 중요한 방어 기전이다. 예를 들어 건강한 사람의 경우 피부 면역세포가 감염된 세포를 제거해, 피부에 존재하는 공생 인유두종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억제한다.
그러나 나무인간 증후군이라는 희귀 피부 질환을 가진 사람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이 질환에서는 일반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인유두종바이러스가 제거되지 않고 계속 증식한다. 그 결과 피부에 사마귀가 생기거나 비흑색종 피부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전 연구에서는 나무인간 증후군이 T세포 면역 기능의 이상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 록펠러대학교 연구진과 협력 연구팀은 나무인간 증후군 환자들에게서 특정 유전 변이가 존재하는지 조사했다.
최근 학술지 ‘Science Immunology’에 발표된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나무인간 증후군 환자 일부에게서 면역세포 이동과 관련된 유전자 돌연변이를 발견했다. 이 변이는 피부 면역 방어 능력을 약화시키며, 피부에 존재하는 인유두종바이러스에 대한 취약성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면역세포 이동을 막는 ‘ITGAL’ 유전자 변이
연구진은 서로 혈연 관계가 없는 나무인간 증후군 환자 62명을 분석했다. 그 결과 22명에게서는 이미 알려진 해당 병의 원인 유전자 변이가 발견됐다. 하지만 나머지 환자들의 발병 원인은 설명되지 않았다.
추가 분석에서 연구팀은 이들 중 일부가 ITGAL 유전자의 유전 변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ITGAL 유전자는 $\alpha L$ 인테그린 단백질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 단백질은 $\beta 2$ 사슬과 결합해 LFA-1(림프구 기능 관련 항원-1)이라는 인테그린 단백질 복합체를 형성한다. LFA-1은 T세포 같은 백혈구 표면에 널리 존재하며, 면역세포가 조직 사이를 이동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정상 $\alpha L$ 단백질과 환자에게서 발견된 변이 $\alpha L$ 단백질을 인간 배아 신장 세포에 각각 도입해 비교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변이 $\alpha L$ 단백질을 가진 세포에서는 T세포 표면의 LFA-1 발현이 거의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결함은 실제 세포 기능에도 영향을 미쳤다. 화학 신호(케모카인)에 반응해 이동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실험에서, ITGAL 돌연변이를 가진 세포는 거의 이동하지 못했다. 반면 정상 세포는 CXCL12라는 케모카인 방향으로 활발히 이동했다. 환자들의 백혈구에서도 LFA-1 발현이 크게 감소하고 이동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동일하게 확인됐다.
피부로 이동하지 못한 T세포, 혈액에 갇히다
정상적인 면역 체계에서는 피부 기억 T세포(Skin Memory T Cells)가 혈액과 피부 사이를 지속적으로 순환하며 피부를 보호한다. 하지만 LFA-1이 부족한 T세포는 이러한 이동 능력을 잃는다.
연구 결과, 이 환자들의 기억 T세포는 정상적으로 생성되고 분화되지만 피부로 이동하지 못하고 혈액 속에 머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면역세포 자체는 만들어지지만, 감염이 일어나는 피부 조직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가 ITGAL 유전자 변이가 나무인간 증후군의 유전적 원인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 변이가 존재하면 피부에서 바이러스 증식을 통제할 면역 감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결국 사마귀와 피부 병변이 발생하게 된다.
희귀 피부 질환의 유전적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 이번 연구는 피부 면역 방어에서 T세포 이동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성치훈 기자/ hello@sciencewave.kr
출처: The Scientist, “A Genetic Defect Impairs T Cells Surveillance of Skin Viruses”
Science Wave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