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0만 년 전 아프리카 초원. 작은 체구의 인류 조상인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는 석기를 다루며 동물 뼈를 부수고 고기를 손에 넣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학자들은 이들이 인류 최초의 사냥꾼, 먹잇감에서 포식자로 전환한 첫 주인공일 것이라 여겨왔다. 그러나 최신 연구는 정반대의 그림을 보여준다. 호모 하빌리스는 오히려 표범 같은 맹수에게 잡아먹히는 나약한 존재였다는 것이다.
표범 이빨 자국, ‘사냥꾼 하빌리스’ 가설을 흔들다
미국 라이스대 마누엘 도밍게스-로드리고 교수팀은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에서 나온 호모 하빌리스 두 개체(OH 7 아래턱, OH 65 위턱)를 인공지능으로 재분석했다. 사자·하이에나·표범·악어·늑대가 남긴 이빨 자국 사진 1500여 장과 실제 실험 뼈 자료로 컴퓨터 비전을 학습시켜, 뼈 표면의 미세한 패턴을 분류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 결과 OH 7의 턱뼈 두 지점, OH 65의 위턱에서 표범 치흔과 일치하는 자국이 확인됐다. 턱뼈는 포식자가 물어 죽이거나 먹이를 해체할 때 흔적이 남기 쉬운 부위다. 이 증거는 호모 하빌리스가 환경을 지배한 사냥꾼이라기보다, 표범 같은 대형 포식자의 먹잇감이었음을 시사한다.

[출처=Annals of 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s, Manuel Domínguez-Rodrigo et al.]
호모 하빌리스는 올도완 석기와 함께 발견되며 오랫동안 “최초의 사냥꾼 인류”로 설명돼 왔다. 그러나 턱뼈의 치흔은 최소한 일부 상황에서 하빌리스가 포식자 사슬의 아래쪽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올도완 석기 문화의 적극적 사냥 주체가 하빌리스가 아니라, 뒤이어 등장한 더 진보된 종 호모 에렉투스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두뇌 용량의 증가가 곧장 생태계 지배로 이어졌다는 통념에 균열이 생긴 셈이다.

AI가 바꾼 해석
이번 연구의 핵심은 인공지능이 치흔 판독을 정량화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연구자 경험에 의존해 포식자 흔적을 해석했지만, 이번에는 포식자별 이빨 간격·형태·자국 배열을 학습한 AI 모델이 눈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차이까지 잡아내, 표범 가능성을 통계적으로 입증했다. 동일 지역 동물 뼈와의 교차검증도 해석의 신뢰도를 높였다.
이 결과는 하빌리스의 석기 사용이 곧 능동적 사냥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부각한다. 돌도구 흔적은 사체를 절단하거나 골수를 얻기 위한 행위였을 수 있으며, 하빌리스는 실제로는 사체 청소와 제한적 사냥을 병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번 분석은 두 개체 화석에 한정돼 있으며, 치흔이 사망 당시의 공격 흔적인지 사후 훼손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반복적으로 확인된 표범형 치흔은 하빌리스가 맹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한 피식자 위치에 있었음을 뒷받침한다.
이 발견은 인류가 먹잇감에서 포식자로 전환한 과정이 단숨에 일어난 혁명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친 점진적 변화를 거쳤음을 보여준다. 두뇌가 커지기 시작한 시기조차 초기 인류는 여전히 취약했고, 생존 전략은 지역과 종에 따라 달랐다는 사실이 부각된다.
논문은 뉴욕과학아카데미 연보(Annals of 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s) 9월 26일자에 게재됐다.
손동민 기자/ hello@science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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