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 정말 잠깐 ‘제정신’으로 돌아올까…과학이 밝힌 충격적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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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웨이브

치매 환자가 어느 순간 또렷해 보인다고 해서 정말 중요한 결정을 내릴 능력이 되돌아온 것일까. 미국 심리학자 제시카 초플린은 법이 오랫동안 인정해 온 ‘명료한 간격’이라는 개념이 실제 과학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계약, 재산 처분, 의료 동의 같은 복잡한 결정을 이해할 능력은 이미 크게 약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흰 수염을 가진 노인이 서류에 서명하고 있는 모습, 배경에는 흐릿하게 보이는 사람들 여러 명이 있다.
[사진=AI 생성 이미지]

치매 환자의 ‘잠깐 회복’과 명료한 간격의 실상

미국 위스콘신주의 노인 레이먼드 존스는 어느 날 집 문 대신 창문으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이웃이 이상함을 느끼고 경찰에 신고했을 때 그는 당시 대통령 이름도 말하지 못했고, 연도를 “2055년”이라고 답했다. 결국 정신 건강 평가를 위해 보호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이상 행동은 갑자기 생긴 게 아니었다. 그는 이미 몇 달 전부터 낯선 사람 집 문을 두드리며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아내가 자신을 떠났다고 소리쳤고, 존재하지 않는 친구를 찾겠다며 병원을 찾아가기도 했다.

경찰 두 명이 집 앞에서 노인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 한 명은 메모를 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그 옆에 서 있다.
[사진=AI 생성 이미지]

한 구매자는 감정가 15만5천 달러짜리 30에이커 토지에 10만 달러를 제안했다. 존스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며칠 뒤 마음을 바꿔 거래를 받아들였다. 계약 직전, 이웃은 존스의 이상 행동을 걱정해 사회복지기관에 신고했지만 거래는 그대로 진행됐다. 다음 날 그는 고속도로에서 차량을 몰다 위험한 상황을 만들었고, 다시 대통령 이름과 연도를 기억하지 못했다.

구매자는 존스가 거래 전후에는 치매 증상을 보였지만, 계약 당시만큼은 괜찮았다고 주장했다. 평생 친구는 존스가 “거래를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고 증언했고, 계약 담당자들도 존스가 절차를 이해하는 데 문제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변호인 측은 여기서 ‘명료한 간격(lucid interval)’ 개념을 꺼냈다. 정신 능력이 대부분 무너져도 잠시 완전히 회복되는 순간이 있으며, 존스가 그때 계약했다는 주장이다. 미국 일부 지역 법원은 오랫동안 이런 개념을 인정해 왔다.

존스 사건에서 전문가 증언에 나선 임상심리학자는 “겉보기에는 또렷해 보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말은 멀쩡해 보였어도 실제로는 자신의 재산을 처분할 판단 능력이 없었다는 뜻이다.

노인이 글을 쓰며 집중하고 있는 모습, 배경에는 흐릿한 형체들이 있다.
[사진=AI 생성 이미지]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치매 환자가 갑자기 정신이 맑아진 듯 보이는 순간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잠깐의 ‘집중력 회복’ 또는 ‘깨어 있는 느낌’에 가까울 뿐, 복잡한 결정을 내릴 능력이 돌아온 상태는 아닐 가능성이 크다.

한 연구에서는 치매 환자들을 대상으로 반응 속도와 생리적 반응을 측정했다. 그 결과, 사람들의 상태는 매우 짧은 시간 단위로 오르내렸다. 어떤 순간에는 정신이 또렷해 보이고 주변과 소통하는 듯했지만, 오래 집중하는 능력은 유지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계약을 이해하려면 여러 조항을 동시에 기억해야 한다. 어떤 선택이 한편으로는 이익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손해가 될 수도 있다는 점도 따져야 한다. 또 장기적인 결과까지 생각해야 한다. 단 몇 분 정신이 맑아진다고 해서 이런 복잡한 사고 능력이 되돌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연구진은 치매 환자들에게 숫자를 기억하게 하는 간단한 테스트를 반복했다. 어떤 순간에는 숫자 다섯 개를 기억하다가도 몇 분 뒤에는 두 개밖에 기억하지 못했다. 중요한 점은, 겉으로 깨어 있고 멀쩡해 보여도 실제 기억력과 추론 능력이 함께 좋아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가족 입장에서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치매 환자가 잠깐 예전 모습처럼 느껴지는 순간, 다시 대화하고 관계를 느끼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잠시 돌아온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이런 변화가 ‘의사결정 능력의 회복’을 뜻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빈민가의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
[사진=AI 생성 이미지]

‘결정권 박탈’이 아닌 조기 준비와 지원 체계 구축

법원은 결국 존스가 땅을 팔 당시 충분한 판단 능력이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명료한 간격’이라는 법 개념 때문에 가족은 긴 소송을 해야 했고, 다른 사건들에서는 오히려 이런 개념이 거래를 인정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문제는 법정이 치매 환자의 의사결정 능력을 가리기에 가장 좋은 장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결과가 너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방법은 후견인 제도다. 하지만 이는 치매 환자의 결정권 자체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린다. 개인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크게 잃을 위험도 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더 이른 준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치매 초기에는 많은 사람이 아직 자신의 변화도 어느 정도 알아차린다. “예전보다 판단이 어려워졌다”,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는 걸 느끼기도 한다. 바로 그 시기에 도움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큰돈이 오가는 금융 거래에는 믿을 만한 가족이 함께 확인하도록 할 수 있다. 공동 계좌를 만들어 두 사람 서명이 있어야 돈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있다.

의료 현장에서도 비슷한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환자가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말해도 실제 내용을 이해하거나 기억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 진료 때 가족이 함께 들어가는 것도 중요한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지원 의사결정 계약(supported decision-making agreement)’ 제도도 도입됐다. 이는 치매 환자가 자신의 법적 권리를 잃지 않은 채,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중요한 결정을 검토하도록 돕는 방식이다.

초플린 교수는 인간의 판단 능력을 “켜짐과 꺼짐”의 스위치처럼 보면 안 된다고 말한다. 현실의 인지는 훨씬 복잡하다. 집중력은 잠깐 돌아올 수 있지만, 깊은 판단 능력은 이미 무너졌을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지금 멀쩡해 보이는가?”보다 “이 사람이 이 결정의 어느 부분까지 안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를 묻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겉보기의 또렷함을 진짜 동의 능력으로 착각하지 않을 수 있다.

성치훈 기자/ hello@sciencewave.kr

출처: Psyche, “It’s not always clear when someone’s lost the ability to dec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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