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은 죄가 없다? 췌장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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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웨이브

  • 췌장암 모델 생쥐 실험에서 확인된 고지방 식단의 리스크

‘지방은 죄가 없다’는 말, 췌장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최근 췌장암 모델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고지방 식단이 체중 증가와 함께 췌장 세포에 암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전암성 변화를 유도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한 번 시작된 변화라도 식단을 저지방으로 바꾸면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점은 식이 조절의 중요성을 다시 부각시킨다. 몸무게는 줄었을지 몰라도, 췌장은 반응하고 있었던 셈이다. 지방을 자유롭게 섭취해도 된다는 이른바 ‘지방 만능론’은, 적어도 췌장 건강에 이의를 제기한다. 탄수화물의 과잉 섭취가 문제라고 해서, 지방을 무제한 옹호하는 논리는 이번 실험 결과와 배치된다.

고지방 → 전암성 변화, 저지방 → 억제 가능성

미국 UC 데이비스 헤라르도 매켄지 교수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Journal of Nutrition』을 통해, 5주령의 췌장암 모델 생쥐 72마리를 세 그룹으로 나눠 21주간 식단을 달리하며 경과를 관찰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첫 번째 그룹은 열량의 60%가 지방인 고지방 먹이를, 두 번째 그룹은 열량의 11%만 지방인 저지방 먹이를 섭취했다. 세 번째 그룹은 처음 8주는 고지방을, 이후 13주는 저지방으로 바꿔 제공됐다.

그 결과, 고지방 그룹은 저지방 그룹보다 체중이 평균 1.7배 증가했고, 췌장에서 전암성 변화가 60% 더 많이 관찰됐다. 반면, 고지방에서 저지방으로 전환한 그룹은 체중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으며, 전암성 변화도 억제됐고 암으로 진행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체중이나 외형적 건강 상태를 넘어, 췌장 세포 대사와 유전자 발현, 면역 반응, 장내 미생물 환경까지 포괄적인 수준에서 확인됐다. 특히 고지방 식이는 리놀레산 대사산물 등 해로운 지방산 부산물을 증가시키고 장내 환경을 악화시켰지만, 저지방 전환 이후엔 이런 생리학적 지표도 정상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지방은 죄가 없다? 그렇다면 왜 췌장은 반응했을까

이번 연구는 최근 몇 년간 퍼져온 ‘지방 옹호’ 흐름에 균열을 가한다. 저탄수화물·고지방 식단(LCHF), 이른바 ‘저탄고지’는 체중 감량과 혈당 조절에 효과적이라는 이유로 각광받아왔지만, 장기적인 영향에 대해선 경고가 줄곧 제기돼 왔다.

특히 췌장은 지방 대사와 밀접히 연관된 장기다. 고지방 식이가 염증 유도, 인슐린 저항성 증가, 세포 스트레스 유발 등을 통해 췌장암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동물 실험뿐 아니라 일부 역학 연구에서도 꾸준히 관찰돼왔다.

물론, 이번 실험은 생쥐 모델이라는 한계를 갖는다. 사람의 식이 습관은 더 복잡하며, 췌장암의 발병은 단일 요인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방은 무해하다”는 주장에 제동을 걸 만한 충분한 생물학적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탄수화물 vs 지방, 누가 죄인인가

한편, 탄수화물은 오랜 기간 비만과 대사질환의 주범으로 몰려왔다. 정제 탄수화물과 과당 중심의 고탄수화물 식단이 인슐린 저항성, 비만, 염증과 관련 있다는 연구도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탄수화물은 독이고 지방은 무한정 먹어도 된다”는 식의 이분법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약하다.

지방도 종류에 따라 그 영향이 다르다. 불포화지방(예: 올리브유, 견과류)은 항염 효과를 보이지만, 포화지방이나 트랜스지방은 대사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즉, 탄수화물이든 지방이든, 극단은 건강에 이롭지 않다.

식단 균형 설계가 기초···식습관이 세포 변화 일으켜

연구진은 이번 실험을 통해 “식단 변화는 너무 늦은 시점이란 없다”며, 식습관이 세포 수준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건강한 식습관의 회복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극단적인 식단은 일시적인 효과를 줄 수는 있어도, 장기적인 건강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체중 감량, 혈당 조절, 질병 예방을 모두 고려할 때, 핵심은 ‘균형 있는 섭취’와 ‘지속 가능한 방식’이다.

저탄고지 식단은 일반적으로 하루 탄수화물 섭취를 극단적으로 줄이고, 지방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삼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당류뿐 아니라 곡류, 과일, 유제품의 유당, 섬유질이 포함된 일부 채소까지도 제한된다. 결과적으로 비타민, 미네랄, 항산화물질, 프리바이오틱스 등 다양한 미량영양소 섭취가 함께 감소한다.

인체의 주요 소화기관. 특히 췌장은 소화효소인 리파아제를 분비해 지방을 분해하는 핵심 기관으로, 소장에서 담즙과 함께 작용해 지방을 지방산과 글리세롤로 분해한다. 이 과정이 원활하지 않거나 고지방 식이가 지속되면, 췌장에 대사적 부담이 쌓일 수 있다.

이러한 식단 구성은 특정 대사 경로를 과도하게 자극하거나 억제해, 체내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무너뜨릴 수 있다. 특히 췌장처럼 탄수화물과 지방 대사의 균형을 조절하는 기관은, 지속적인 고지방·저섬유질 환경에 노출될 경우 전암성 변화나 대사 스트레스에 취약해질 수 있다.

식단의 효과는 특정 수치나 단기 반응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어떤 성분을 줄였는지가 아니라, 전체 대사 체계에서 균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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