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기억과 일화 기억의 조합이 ‘내가 누구인지’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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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웨이브

의미 기억(Semantic memory)과 일화 기억(Episodic memory)으로 불리는 두 가지 유형의 기억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인간의 자아 정체성이 확립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식과 경험의 분리: 의미 기억과 일화 기억의 이해

우선 기억은 서술 기억(Declarative memory)과 비서술 기억(Non-declarative memory)으로 나눌 수 있다. 서술 기억은 의식적 인지 활동을 동반한다. 내 이름이 무엇인지, 현재는 몇 년도인지, 냉장고에 겨자를 사 놓았는지 등이 서술 기억에 해당한다. 반면, 비서술 기억은 컴퓨터 키보드를 치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따로 의식하지 않아도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서술 기억은 다시 의미 기억과 일화 기억으로 나뉜다. 의미 기억은 현실 세계를 기술하는 일반적 지식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고양이가 포유류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일화 기억은 일반적으로 ‘언제’, ‘어디서’, ‘무엇을’이라는 요소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나는 이 글을 쓰기 직전(언제) 집 안 서재(어디)에서 반려 고양이를 안고 있었음(무엇)을 기억한다.

의미 기억의 경우 나 자신을 인식하는 감각은 크게 동원되지 않는다—’어떻게’와 ‘언제’라는 맥락 없이도 객관적 지식을 기억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캔버라가 호주의 수도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의미 기억), 이를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배웠는지는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일화 기억).

기억은 서술 기억과 비서술 기억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서술 기억은 다시 의미 기억과 일화 기억으로 나뉜다.
[사진=미드저니 생성 이미지]

의미 기억과 일화 기억의 차이를 보여준 사례

20세기 중반에 실시한 기억상실증 환자 사례 연구들은 의미 기억과 일화 기억의 차이를 보여주는 초기 증거를 마련하였다.

예를 들어, 헨리 몰레이슨과 켄트 코크레인은 모두 뇌 손상으로 인해 일화 기억 능력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벌어진 개인적 사건들은 기억해내지 못했지만, 일반 상식은 많이 알고 있었다. 그들의 기억 속에서 개인적 과거는 사라졌지만, 일반 지식은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이었다.

코크레인은 뇌 손상을 입은 상태로 타이어 펑크 수리 방법을 디테일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하지만 자신이 이 작업을 해본 적 있다는 사실은 기억해내지 못했다.

반면, 일화 기억 능력은 대체로 양호하지만, 의미 기억을 불러오는 능력은 크게 손상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른바 의미 치매(Semantic dementia)이다.

어린 아이들은 의미 기억과 일화 기억의 체계를 모두 가지고 있지만, 저마다 발달 속도는 다르다. 의미 기억 형성이 먼저 발달하는 반면, 일화 기억은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진정한 일화 기억 능력은 만 3~4세 경이 되어야 완전히 발달한다.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이 희미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일화 기억 능력은 어린 시절에 더 느리게 발달하지만, 노년기에는 더 빠르게 쇠퇴한다. 평균적으로, 노인들은 기억력 검사에서 젊은 사람들에 비해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기억해내는 능력이 떨어지는 결과를 보였다.

일반적으로 치매에 걸린 노인들의 경우 일화 기억 능력이 훨씬 더 떨어진다. 예를 들어, 파스타가 어떤 음식인지에 대해선 디테일한 지식을 나열할 수 있어도 자신이 전날 점심으로 파스타를 먹었다는 사실은 기억해내지 못할 수 있다.

[사진=Unsplash/CC0 퍼블릭 도메인]

유기적 연결을 통한 자아 정체성의 형성

궁극적으로 이 모든 기억은 함께 작동한다. 뇌 영상 연구에 따르면, 의미 기억과 일화 기억 모두를 회상할 때 뇌의 중첩되는 영역이 활성화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두 가지 유형의 기억을 별개의 기억 체계보다는 연속체로 보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는 수영을 잘한다”고 말할 때 이는 ‘어떻게’, ‘왜’, ‘언제’와 같은 맥락이 누락된 의미 기억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사실 이러한 개인적 사실을 회상해내는 건 수영을 했던 일화적 기억도 함께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이 모든 것은 의미화(semanticisation)로 알려진 현상과 관련이 깊다. 이는 일화 기억이 점차 의미 기억으로 변하는 것을 뜻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는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이해한다. 일화 기억은 개인적으로 경험을 했던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해주며, 의미 기억은 그 경험들을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묶어 준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두 기억의 경계는 점차 흐려진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저장하는 창고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자아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재구성하는 능동적인 시스템이다.

이는 일화 기억이 점차 의미 기억으로 변환되는 ‘의미화(semanticisation)’ 현상과 관련이 깊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는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이해한다. 일화 기억은 개인적 경험의 순간으로 되돌아가게 해주며, 의미 기억은 그 경험들을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묶어 준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두 기억의 경계는 흐려지지만,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저장하는 창고가 아니라 우리의 자아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재구성하는 능동적인 시스템이다.

성치훈 기자/ hello@sciencewave.kr

출처: Medical Xpress, “Your sense of self is deeply tied to your memory—here’s 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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