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스 코드’는 폭발을 막기 위해 같은 8분을 반복하는 SF 스릴러지만, 그 안에는 ‘나는 누구인가’와 ‘시간은 바꿀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이 숨어 있다. 철학을 공부한 덩컨 존스 감독은 빠른 추격극 속에 인간의 정체성, 시간, 기술과 인간 정신의 관계를 녹여냈다.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난 남자
미 육군 대위 콜터 스티븐스는 어느 날 아침 시카고로 향하는 통근열차에서 갑자기 깨어난다. 맞은편에는 크리스티나라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앉아 있지만 그는 그녀가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더 이상한 일은 화장실에서 벌어진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 아니며, 신분증에는 교사 숀 펜트리스라는 전혀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다. 혼란에 빠진 사이 열차가 폭발하고 승객들은 모두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스티븐스는 다시 깨어난다. 그는 정부가 비밀리에 진행하는 ‘소스 코드’라는 실험에 투입돼 있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죽은 사람의 마지막 8분을 반복해서 경험할 수 있으며, 스티븐스는 숀의 몸으로 들어가 폭발 직전의 열차를 계속 경험한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단순히 과거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다. 열차 폭발범이 같은 날 시카고에서 더 큰 폭탄 테러를 벌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8분 안에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 스티븐스는 죽고 다시 깨어나는 과정을 거듭하며 조금씩 진실에 접근한다.
‘나는 누구인가’에서 ‘시간을 바꿀 수 있는가’까지
‘소스 코드’의 구조는 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사랑의 블랙홀’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라쇼몽’, 선택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슬라이딩 도어즈’와도 닮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기에 현대 과학과 철학의 문제를 결합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정체성이다. 스티븐스의 의식은 그대로인데 몸과 얼굴은 숀의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나’를 결정하는 것은 몸일까, 아니면 정신과 기억일까. 이는 정신과 육체의 관계를 고민했던 르네 데카르트의 철학적 질문과 이어진다.
두 번째는 시간이다. 과거는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절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 영화는 끊임없이 묻는다. 스티븐스가 같은 8분을 반복하면서 다른 행동을 할수록 이 질문은 더욱 커진다.
마지막은 기술과 인간 정신의 관계다. 인간의 기억과 의식까지 기술이 다룰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나’라는 존재를 어디까지 지킬 수 있을까. 영화 속 초고난도 양자 기술은 사람을 살리는 도구인 동시에 인간의 정신을 기술이 통제할 수도 있다는 불편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의 거대한 조형물 ‘클라우드 게이트’는 이런 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거울처럼 빛나는 표면에는 현실 세계가 비치지만 그 모습은 휘어지고 뒤틀린다.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이 과연 유일하고 절대적인 현실인지 마지막까지 질문을 남기는 셈이다.
결국 ‘소스 코드’는 복잡한 철학을 설명하는 영화가 아니다. 8분이라는 짧은 시간을 반복하는 긴박한 이야기를 통해 ‘나는 누구인가’, ‘시간은 정말 되돌릴 수 없는가’, ‘기술이 인간의 정신까지 지배한다면 인간다움은 무엇인가’라는 세 가지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는 SF 영화다.
성치훈 기자 hello@sciencewave.kr
출처: The Guardian, “Source Code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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