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의 지독한 티(TEA)사랑?···우주에서도 티타임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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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웨이브

영국인에게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하루의 리듬을 만드는 문화이자 생활의 상징이다. 흔히들 농담처럼 말한다. “영국인이 달에 간다면 제일 먼저 챙길 건 깃발이 아니라 주전자일 것”이라고. 그런데 이 농담이 더 이상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 않게 됐다. 영국 켄트대학교 연구팀이 달 표면을 모사한 토양에서 실제로 차나무를 키우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달에서는 성장, 화성에서는 실패

실험은 켄트대학교 물리과학부의 나이젤 메이슨 교수와 식물생물학 강사 사라 로페즈 고몰로 박사가 주도했다. 영국 차 재배 기업 다트무어 티, 다큐 제작사 라이트커브 필름, 유럽행성학회(Europlanet)가 협력에 참여했다. 연구진은 달과 화성의 토양 성분을 인공적으로 재현하고, 영국 데본 지방의 일반 흙을 대조군으로 삼아 차나무 묘목을 심었다. 모든 그룹은 동일한 빛·습도·온도 조건 아래 수주 동안 관찰되었다.

달과 화성의 극한 환경을 모사한 실험실에서 차나무 묘목의 생장을 관찰하는 켄트대학교 연구진. 온도·습도·조명까지 우주 조건을 재현한 가운데, 달 토양에서 묘목이 뿌리를 내리고 잎을 키우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사진=University of Kent]

화성 및 달 토양을 모사한 토양에서 자란 차나무 묘목을 연구원이 분리해 뿌리 상태를 점검하는 장면. 달 토양의 묘목은 건강하게 자랐으나, 화성 토양에서는 성장이 멈추며 시들어갔다.
[사진=University of Kent]

달 토양에 심은 묘목은 초반부터 뿌리를 뻗으며 안정적으로 활착했고, 잎의 수와 크기 역시 지구 토양의 대조군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줄기가 굵어지고 새싹이 돋는 등 정상적인 성장 패턴이 이어졌다.

반면 화성 토양에서는 뿌리가 제대로 내리지 못한 채 잎이 마르고 색이 옅어졌으며, 광합성이 유지되지 못했다. 몇 주가 지나기도 전에 생장이 멈추었고 결국 시들어갔다. 이는 화성 모사 토양이 수분과 영양분을 보유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산성도와 화학 조성이 식물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연구원이 달 토양에서 자란 식물 샘플을 정밀 분석하기 위해 집게로 옮기고 있다. 극미량의 토양에서도 발아와 생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우주 농업 연구와 지구 농업 문제에 영감을 준다.
[사진=University of Florida 제공, 2022 아폴로 달 토양 식물 재배 연구]

결과적으로 달 토양은 척박하더라도 환경 제어가 이루어진다면 작물 재배가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했다. 반대로 화성 토양은 현 상태로는 생명 유지에 극도로 부적합하며, 별도의 토양 개량이나 대체재 투입이 필수적임이 드러났다.

토양의 수분 함량, 영양분 구성, 산도(pH), 뿌리 길이, 잎의 건강 상태 등 세부 지표는 켄트대학교 학생 연구자 안나 마리아 비르트와 플로렌스 그랜트가 기록·분석했다.

먼 훗날 달에서 티타임을

사라 로페즈 고몰로 박사는 “차나무가 달 토양에서도 자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앞으로 이 조건에서 식물의 생리 반응을 더 깊이 이해하고, 다른 작물에도 확대 적용하는 것이 목표이다”라고 밝혔다. 나이젤 메이슨 교수는 “우리는 이제 단순히 우주를 다녀오는 시대를 넘어 정착을 논의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달에서 식물이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은 향후 기지 내 온실에서 지구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언젠가 달에서 티타임을 즐기는 모습도 상상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트무어 티의 조 하퍼는 “비전통적 환경에서 차를 재배한 경험이 이번 연구에 기여하였다. 실험 과정에서 얻은 재배 노하우가 영국 현지 농장에도 적용되어 품질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라고 했다.

켄트대학교 연구팀(사라 로페즈 고몰로 박사와 학생 연구진)이 달 토양에서 자란 차나무 묘목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번 연구는 우주 농업 가능성을 탐구함과 동시에, 척박한 지구 토양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University of Kent]

이번 성과는 2025년 9월,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열린 유럽 최초 우주 농업 워크숍에서 발표되었다. 연구는 원래 라이트커브 필름의 행성과학자 마르텐 루스-세로테가 포르투갈에서 진행하던 차 재배 실험에서 출발해, 켄트대학교와 협력으로 확대된 프로젝트다.

연구진은 이번 성과가 기후변화와 과잉 경작으로 점점 황폐해지는 지구 토양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극한 조건에서 작물이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는지를 밝히는 과정이, 불모지 재활성화 연구를 앞당기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젤 메이슨 교수는 “우주 농업 연구는 지구의 토양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생명이 살기 어려운 땅을 어떻게 다시 비옥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지구와 우주 모두에서 중요한 과제이다”라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자료: University of K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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