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를 품에 안고 “우리 아가, 잘 잤어?” 하고 한 톤 높인 목소리로 말을 건네면, 아기는 갸웃하던 눈을 크게 뜬다. 이렇게 높은 음조, 느린 속도, 과장된 억양으로 구성된 ‘유아 지향 말투(child-directed speech)’는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짧고 반복적인 리듬 덕분에 아기는 몇 달 만에 모국어의 음소를 구별하고, 두 살이 되기 전 수백 단어를 조합하기 시작한다.
이때 시각 자극도 함께 작동한다. 어른은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눈을 맞추고, 입술과 표정을 크게 움직인다. 아기는 이 움직임에 맞춰 소리와 입 모양을 연결하며 음운 지도를 그려 나간다. 언어 습득 이론은 이런 과정을 ‘프로소딕 부트스트래핑(prosodic bootstrapping)’이라고 부른다. 과장된 억양과 명확한 음절 경계가 일종의 안내선 역할을 해, 아직 외국어처럼 들릴 수도 있는 음성 흐름 속에서 문장 경계를 찾아내는 첫 단계를 제공한다.
이처럼 아기에게 맞춰 조정된 음성과 시각 자극이 언어 발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면, 다른 영장류도 유사한 방식으로 새끼와 소통할까? 인간과 가까운 유인원들도 비슷한 전략을 사용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스위스 취리히대와 뇌샤텔대 연구진은 인간을 포함한 다섯 종(보노보·침팬지·고릴라·오랑우탄)의 아기 주변에서 실제로 들려오는 음성 데이터를 야생 환경에서 2,000시간 이상 수집하고 분석했다.
유인원의 양육 언어는 시각·촉각 중심
분석 결과, 인간 부모는 아기에게 말을 걸 때 음조·속도·리듬을 분명히 조정해 의도된 방식으로 소통했다. 전체 발화 중 유아 지향 말투가 차지하는 비율은 35% 이상이었다. 반면 보노보와 침팬지를 포함한 다른 유인원들은 대부분 아기가 성체 간 대화를 수동적으로 듣는 방식에 머물렀고, 새끼를 향해 발화 방식을 조정해 말하는 경우는 3% 미만에 불과했다. 음성 신호 자체보다는 몸짓, 접촉 등 비음성적 상호작용이 중심이었다.
연구진은 이러한 차이를 단순한 습관이나 기술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인간은 장기간의 의존적 양육과 공동 돌봄(cooperative breeding) 시스템을 기반으로, 언어 입력 방식도 점차 대상 맞춤형으로 발달시켜 왔다. 반면, 다른 유인원은 생애 초기 성장 속도가 빠르고, 의사소통에서도 시각·촉각 중심의 신호에 의존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유아 지향 말투는 결국 인간이 아기의 발달 단계에 맞춰 언어 자극을 ‘설계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진화적 단서를 제공한다.

인간, 뇌 회로 자극-문화 누적의 가속
신경과학 연구가 보여주듯, 유아 지향 말투는 단순히 듣기 좋은 언어가 아니다. 과장된 억양은 청각 피질뿐 아니라 보상 회로(복측선조체)까지 자극해 아기의 주의를 끌고, 또렷한 음절 경계는 거울뉴런 네트워크와 브로카 영역을 동시에 활성화해 발화 패턴을 미리 시뮬레이션하도록 만든다. 이 복합적 자극 덕분에 아기는 발화-모방-피드백 순환을 단기간에 구축하며, 실제 말소리로 이어지는 운동 회로가 빠르게 정교화된다.
이렇게 설계된 입력을 받은 아기는 생후 6개월이면 모국어 음운 통계를 처리하고, 돌 무렵에는 단어 의미와 사용 상황을 연결한다. 두 돌이 되기도 전에 수백 개 단어를 결합해 문장 규칙을 추론하며, 세 살 무렵에는 시제·조사까지 구사한다. 개인 발달에 그치지 않고, 이렇게 빠른 언어 습득은 지식·규범·기술이 세대마다 정교해지는 ‘래칫 효과(ratchet effect)’를 촉진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언어를 소비하는 수준을 넘어, 언어 입력 자체를 설계·조절하는 종으로 진화했으며, 이것이 뇌 구조·사회 조직·문화 축적을 동시에 밀어올린 핵심 동력이다. 앞으로 연구팀은 몸짓·촉각 등 비음성 신호까지 포함해, 종별 아기 지향 커뮤니케이션의 진화 지도를 더욱 정밀하게 그려나갈 계획이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참고 논문: Franziska Wegdell et al, The Evolution of Infant-directed Communication: Comparing Vocal Input Across all Great Apes, Science Advances (2025). DOI: 10.1126/sciadv.adt7718. www.science.org/doi/10.1126/sciadv.adt7718
자료: Science Advances / University of Zurich
Science Wave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1 thought on “‘아기 말투’, 유인원도 쓸까? 인간만의 언어 입력 방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