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 한 마리가 상상 속 티 파티(Tea Party)를 즐기는 모습이 관찰되면서, 인간만의 능력이라고 여겨졌던 상상력이 유인원에게도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가짜 주스’와 ‘상상 속 포도’를 기억하고 구별하는 행동은, 이들이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실제로 머릿속에서 상황을 그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보노보 ‘칸지’, 상상 속 주스와 포도를 기억하다
인간만이 상상력을 가진 존재일까. 최근 연구는 이 질문에 새로운 답을 던졌다. 보노보 ‘칸지(Kanzi)’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물건을 떠올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칸지는 단순한 보노보가 아니다. 그는 ‘렉시그램(lexigram)’이라 불리는 기호를 이용해 인간과 의사소통할 수 있었던 특별한 개체다. 이 기호는 단어를 대신하는 그림 같은 것으로, 칸지는 이를 활용해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표현할 수 있었다.
연구자 아말리아 바스토스는 2023년 칸지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렉시그램 보드를 이용해 연구자들에게 서로를 쫓아가라고 요청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특히 실제 상황이 아닌 ‘장난처럼 하는 행동’에도 큰 흥미를 보였다는 점에서, 그는 단순한 반응을 넘어 어떤 ‘상상 놀이’를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에 연구팀은 칸지가 과연 보이지 않는 것을 머릿속에서 떠올릴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설계했다. 대표적인 실험은 이른바 ‘상상 속 티 파티’였다. 연구자는 빈 주전자와 컵을 들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채 칸지가 좋아하는 주스를 따르는 시늉을 했다. 이후 한 컵의 ‘가짜 주스’를 다시 주전자에 붓는 척한 뒤, 어느 컵이 여전히 ‘가득 차 있는지’ 물었다.
놀랍게도 칸지는 세 번 중 두 번 이상 정확하게 답을 골랐다. 단순히 찍은 것보다 훨씬 높은 정확도였다. 다만 연구자들은 혹시 칸지가 실제로 주스가 있다고 착각한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그래서 추가 실험을 진행했다.
이번에는 한 컵에는 진짜 주스를 넣고, 다른 컵에는 이전과 같은 ‘가짜 주스’를 넣었다. 칸지는 거의 80%에 가까운 확률로 진짜 주스가 든 컵을 선택했다. 즉, 그는 실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 놀이’ 상황에서는 기꺼이 그 규칙을 따라 행동한 것이다. 이후 진행된 ‘상상 속 포도’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상상력은 인간만의 능력이 아닐 수 있다
이 발견은 단순한 동물 행동 연구를 넘어, 상상력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유인원도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 왔지만, 그것이 ‘계획된 사고’인지, 아니면 우연한 행동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그러나 상상력이 존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간이 새로운 도구를 발명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을 실제로 만들기 전에 머릿속에서 먼저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발명하려면,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물건을 먼저 상상해야 한다. 만약 유인원도 이런 능력을 일부 갖고 있다면, 그들의 행동 역시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생각’의 결과일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번 연구는 특히 상상력이 얼마나 기본적인 인지 능력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의 경우 생후 1년 정도면 간단한 역할 놀이를 시작하고, 3세가 되면 복잡한 상상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런 능력은 문제 해결, 창의성, 사회적 상호작용 등 다양한 영역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칸지는 2025년 3월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인간과 유인원의 경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중요한 사례로 남았다. 앞으로 연구자들은 인간과 함께 자라지 않은 다른 유인원들도 이런 상상 능력을 보일 수 있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만약 그렇다면, 상상력은 더 이상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성치훈 기자/ hello@sciencewave.kr
출처: ScienceNewsExplores, “A bonobo’s imaginary tea party hints that apes can pret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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