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이나 국을 끓일 때 물을 빨리 데우기 위해 한번 쯤 뜨거운 수돗물을 틀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편리한 선택이 생각보다 위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환경보호청(EPA)는 모두 “조리용 물은 반드시 냉수를 사용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단순한 생활 습관 같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과학적 이유가 있다. 온수는 보일러나 온수기 탱크를 거치며 데워지는 과정에서 금속 배관과 장시간 접촉하는데, 이때 중금속 물질이 녹아 들어갈 수 있고, 그중 일부는 체내에 축적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배관 속의 보이지 않는 금속
수돗물의 냉수는 정수장에서 처리된 뒤 곧바로 수도관을 통해 가정으로 공급된다. 반면 온수는 보일러나 온수기 내부를 거쳐 나오며, 이 과정에서 한동안 탱크나 배관에 머무른다. 그 사이에 납, 구리, 니켈, 아연 등 금속이 물에 용출될 수 있다. 특히 온도가 높을수록 금속 용출 속도는 빨라지고, 배관이 오래될수록 부식으로 인한 용출 위험도 커진다.
이런 오염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인체에는 영향을 남긴다. 납은 신경계와 혈액 형성에, 구리는 간과 신장에 부담을 준다. 미량이라도 반복적으로 섭취되면 체내에 축적돼 신경 손상, 빈혈, 고혈압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어린이와 임산부에게는 훨씬 더 민감하게 작용한다.
끓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은 물을 끓이면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중금속은 다르다. 세균이나 염소 소독 부산물(트리할로메탄)은 끓이는 과정에서 제거되지만, 납과 구리 같은 금속은 끓여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수분이 증발하면서 농도가 높아질 수 있다.
실제 사례도 있다. 2022년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온수에서 독성 화합물 페놀(phenol)이 기준치(0.0005mg/L)를 초과해 검출됐다. 페놀은 보일러 내부 코팅재나 배관 재질에서 용출될 수 있는 물질로, 장기적으로 간과 신장 기능을 손상시킬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음용이나 조리 시 반드시 냉수를 사용하고, 사용할 때는 수도를 10~20초간 흘려보낸 뒤 받는 습관을 권장한다. 냉수를 끓여 사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수도의 첫 물은 버리는 것이 좋다. 또한 주기적인 보일러·온수기 점검과 노후 배관 교체는 가정의 기본적인 위생 관리로 꼽힌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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