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 언어로 사는 사람, 더 천천히 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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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웨이브

  • 유럽 27개국 8만 명 분석, 다언어 사용이 노화 속도 절반 수준

일상에서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뇌와 몸의 노화가 늦게 진행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Trinity College Dublin)의 아구스틴 이바녜즈 교수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11일 과학 저널 네이처 노화(Nature Aging)에 발표한 논문에서, 유럽 27개국 8만6천여 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다언어 사용이 ‘가속 노화(accelerated ageing)’ 위험을 크게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한 언어만 사용하는 사람의 생물학적 노화 속도가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보다 약 두 배 빠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 결과는 단순한 언어 능력의 차이를 넘어, 언어 사용이 뇌 건강과 신체 기능 유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 27개국 8만6천여명(평균 연령 66.5세)에 대한 분석에서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한 언어만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생물학적 노화가 일관되게 더 늦게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이점은 사용하는 언어 수가 많을수록 커졌다. [자료=Nature Aging, Jason Rothman et al.]

‘예상보다 늙은 나이’를 계산하다

연구진은 노화 정도를 정량화하기 위해 ‘생체행동적 연령 격차(biobehavioral age gap)’라는 지표를 만들었다. 이는 실제 나이와 건강·생활습관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된 나이의 차이를 의미한다. 예측된 나이가 실제보다 높으면 가속 노화, 낮으면 지연 노화로 해석된다.
분석에는 신체 기능, 인지 능력, 교육 수준, 심혈관 질환, 감각 손상 등 다양한 변수가 반영됐다.

그 결과 단일 언어 사용자보다 다언어 사용자의 가속 노화 위험이 약 54% 낮게 나타났다. 시간에 따른 변화를 추적한 결과(종단 분석)에서도 다언어 사용자는 노화 속도가 평균 30% 정도 느렸다.
연령, 교육, 사회적 참여 수준 등 여러 요인을 통제한 뒤에도 이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유지됐다.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뇌의 유연성과 신체 활력이 함께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사진=Midjourney 생성 이미지]

다연어, 인지 예비력 키워···뇌 활성화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뇌는 언어를 바꿀 때마다 ‘인지 조절’을 반복한다. 어떤 언어를 억제하고 다른 언어를 활성화해야 하므로, 전두엽과 해마, 측두엽 같은 영역이 동시에 작동한다. 이 과정은 주의력·기억력·사고 전환 능력을 자극하며, 결과적으로 뇌의 ‘인지 예비력(cognitive reserve)’을 키운다.

이 인지 예비력은 나이가 들어도 신경세포 손상에 대한 회복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이중언어자는 단일언어자보다 인지 기능 저하 시점이 평균 4~5년 늦게 나타났다. 언어를 자주 전환하며 생기는 이런 훈련 효과는 일종의 ‘뇌 운동’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다언어 사용자는 다양한 사람과 교류할 기회가 많다.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로 생각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관계망이 넓어지고, 정서적 안정과 활력이 유지된다. 이러한 인지적·사회적 자극은 스트레스와 우울을 줄이고, 장기적으로 신체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꾸준한 인지 자극과 사회적 활동은 건강한 노화를 돕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사진=Midjourney 생성 이미지]

이번 연구는 다언어 사용이 노화를 늦추는 직접적 원인임을 단정짓지는 않는다. 연구진은 사회적 활동성, 교육 수준, 문화적 배경 같은 요인들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을 열어뒀다.
또한 언어의 수, 사용 빈도, 언어 습득 시기 등 세부 조건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이바녜즈 교수는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뇌와 몸의 건강을 지탱하는 생활 습관”이라며 “다언어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은 고령화 사회에서 건강한 노화를 촉진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참조 논문: Nature Aging, Agustin Ibanez et al., ‘Multilingualism protects against accelerated aging in cross-sectional and longitudinal analyses of 27 European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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