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의 우울증 환자에게 기존 항우울제가 효과를 보이지 않는 이유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처음으로 밝혀졌다.
노화된 뇌에서 특정 단백질이 항우울 신호를 차단하는 작용을 하며, 이로 인해 치료 효과가 사라진다는 분자 수준의 기전이 제시됐다.
KAIST는 19일, 허원도 생명과학과 석좌교수 연구팀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아주대학교 의료원과 공동으로 극단 선택을 한 환자의 뇌 조직을 분석해 노인 우울증의 새로운 생물학적 경로를 규명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익스페리멘탈 앤 몰리큘러 메디슨’에 8월 15일자로 게재됐다.
연구팀은 뇌의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그중에서도 정보를 처음 받아들이는 치아이랑(dentate gyrus) 영역에 주목했다. 우울증을 유도한 실험용 생쥐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스트레스 상황에서 이 부위에 있는 FGFR1 수용체 단백질의 발현이 뚜렷하게 증가하는 현상을 관찰했다.

젊은 생쥐에서는 FGFR1 활성화로 항우울 효과가 나타났지만, 노인 생쥐에서는 효과가 없었다.
이는 노인 뇌에서 FGFR1 경로가 차단돼 우울증 기전이 다르게 작동함을 보여준다. [자료=KAIST]
FGFR1은 성장인자(FGF) 신호를 받아 세포의 성장과 회복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며, 정상적인 스트레스 저항성과 관련된 신호 전달 경로를 구성한다. 연구팀은 FGFR1 유전자를 제거한 생쥐가 스트레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우울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확인했다. 반대로 광유전학 기술을 활용해 FGFR1을 빛으로 자극하는 ‘optoFGFR1 시스템’을 우울증 생쥐 모델에 적용했을 때는 항우울 효과가 회복됐다.
하지만 같은 실험을 노인 생쥐에 적용하자 항우울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그 원인이 노인 뇌에서 과도하게 발현되는 단백질 ‘넘비(Numb)’에 있다고 분석했다. 넘비는 FGFR1의 신호 전달을 방해해 정상적인 항우울 경로를 차단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로 인해 기존 항우울제가 노인에게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허원도 교수는 “노인 우울증이 단순한 신경세포 손상이 아니라, 특정 단백질이 항우울 경로를 억제해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점을 보여준 연구”라며 “넘비를 표적으로 삼는 치료법 개발로 노인 우울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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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우울증의 약물 저항성이 이런 분자 기전 때문이었다니 의미 있는 발견이네요. 앞으로 치료 방향에도 큰 전환점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