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PTSD 환자 뇌 보니…

Photo of author

By 사이언스웨이브

몇 년 전 큰 교통사고를 겪은 A씨는 지금도 밤마다 쉽게 잠들지 못한다. 사고 당시의 장면이 반복적으로 떠오르고, 일상적인 소음에도 몸이 긴장한다. 병원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진단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의 증상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과거의 기억이 자주 떠오르고, 감정 반응은 의지와 무관하게 되살아난다. 이미 지나간 사건인데도, 뇌와 신체는 여전히 그 순간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국내 연구진은 이러한 상태가 단순히 잊히지 않는 기억 때문이 아니라, 뇌의 조절 기능 자체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기초과학연구원(IBS)과 이화여대 공동 연구팀은 PTSD 환자의 전전두엽에서 비신경세포인 별세포의 기능 이상이 감정 회복 회로의 저하로 이어진다는 병리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PTSD 환자 뇌에서는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에 가바(GABA)가 과도하게 쌓이고 혈류가 감소해 회복 기능이 저하된다. 이 현상은 별세포의 이상으로 발생하며,
신약 후보 ‘KDS2010’은 이 조절 이상을 되돌려 공포 반응을 정상적으로 줄이는 효과를 보였다. [자료=IBS]

감정 조절 회로의 비정상적 억제

연구진은 PTSD 환자와 외상 경험자, 일반인을 포함한 380여 명의 뇌 영상 데이터를 비교 분석한 결과, 전전두엽에서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가바(GABA)의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고, 해당 부위의 혈류량은 감소해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는 감정 조절과 공포 억제를 담당하는 뇌 회로가 과도하게 억제돼 기능을 상실한 상태로 해석된다.

이러한 변화는 신경세포 자체가 아니라, 별세포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별세포는 뇌에서 신경세포를 지원하고 환경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며, 가바 생성에도 관여한다. 연구에 따르면 PTSD 환자의 전전두엽 별세포에서 MAOB(모노아민 산화효소 B)의 활성이 과도하게 증가해 가바가 지나치게 생성되고, 이를 분해하는 효소인 ABAT의 발현은 감소해 가바 축적이 유발되는 병리적 상태가 확인됐다.

PTSD는 공포 기억 자체보다, 이를 조절하지 못하는 뇌 회로의 기능 저하에서 비롯되며, 별세포의 가바 과잉 생성이 그 핵심 병리로 확인됐다.

PTSD의 병태 생리, 뇌 회로 손상으로 설명 가능

단계설명
① 외상 경험강한 외상 자극 노출 → 급성 스트레스 반응 유발
② 별세포 변화전전두엽 내 MAOB 활성이 증가하여 가바 생성 촉진
③ 가바 불균형가바 과잉 생성 및 축적, 가바 분해 효소(ABAT) 감소
④ 기능 저하전전두엽 활동 저하, 혈류 감소 → 감정 조절 및 공포 억제 기능 약화
⑤ 증상 발현지속적인 불안, 회피 행동, 감정 둔화, 플래시백 등 PTSD 증상 고착
⑥ 치료 개입 가능성MAOB 억제제 투여 시 가바 농도 정상화 → 전전두엽 기능 회복 가능

신경전달 불균형을 겨냥한 신약 후보

연구진은 MAOB 활성을 억제하는 신약 후보 물질 ‘KDS2010’을 PTSD 동물 모델에 투여해 효과를 검증했다. 투여 후 가바 농도와 뇌 혈류가 정상 범위로 회복됐고, 공포 반응과 불안 행동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이 물질은 현재 임상 2상 단계에 있으며, PTSD뿐 아니라 조절 기능 장애를 포함한 다른 정신질환으로의 적용도 기대되고 있다.

기존 PTSD 치료제는 세로토닌 수용체를 조절하는 항우울제가 대부분이지만, 반응률은 낮고 효과 발현 속도도 느리다는 한계가 있다. 별세포 유래 조절 기능의 이상을 표적으로 삼는 이번 접근은 치료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할 수 있는 기반을 제시한다.

감정 삭제 아닌 기능 회복이 핵심

이번 연구는 PTSD의 본질을 단순한 기억 고착이 아니라, 회복 회로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뇌 기능 장애로 재정의한다. 가바가 비정상적으로 축적되면서 전전두엽의 활동이 억제되고, 이로 인해 공포 기억을 정리하거나 감정을 안정시키는 능력이 손상되는 구조다.

이 때문에 기억을 지우려는 접근이 아닌, 감정 조절 기능 자체를 회복시키는 방식이 PTSD 치료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뇌 회로의 생물학적 교란을 바로잡는 이번 연구는, 증상을 단순히 눌러두는 방식에서 벗어나 뇌 기능 자체를 복원하는 치료 전략이 가능하다는 점을 처음으로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Science Wave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

Science Wave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