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거를 떠올리면서도 두려움을 느낀다. 얼핏 보면 모순처럼 보이지만, 이 감정은 과거를 향하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은 언제나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결과를 향해 작동하며, 과거에 대한 공포 역시 결국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두려움은 언제나 미래를 향해 있다
두려움은 오랫동안 미래를 향한 감정으로 이해되어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앞으로 닥칠 수 있는 해로운 일에 대한 상상에서 비롯되는 불안”이라고 설명했는데, 오늘날 심리학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길을 걷다가 사납게 짖는 개를 마주쳤다고 해보자. 그 순간 우리는 단순히 개 자체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혹시 물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동시에 떠올린다. 두려움은 이렇게 현재의 대상과 미래의 결과를 한꺼번에 붙잡는다. 눈앞의 상황은 지금 여기에 있지만, 그 상황이 불러올 피해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두려움은 단순한 감정이라기보다 일종의 예측 능력에 가깝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위험하다고 판단할 때, 그 판단을 뒷받침하는 근거로서 미래의 결과를 미리 그려 본다. 다시 말해, 두려움은 ‘무엇이 위험한가’를 인식하는 동시에 ‘그 위험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를 예감하는 과정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결과가 언제나 미래를 향해 있다는 사실이다. 두려움은 결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과거를 두려워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미래를 상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미 끝난 일을 떠올리며 두려움을 느낄까. 그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우리는 과거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거가 지금 이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두려워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사고는 이미 지나간 사건이다. 그러나 만약 그 비행기에 가족이 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곧장 그 이후의 삶을 향해 달려간다. 상실, 슬픔, 달라질 일상 같은 것들이 이어지며 두려움이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이때 두려움의 대상은 과거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이 만들어낼 미래다.
또 다른 경우에는 상상이 시간을 뒤틀어 놓는다. 우리는 기억을 떠올릴 때 단순히 과거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면 속으로 다시 들어가 현재처럼 경험한다. 이른바 ‘정신적 시간 여행’이다. 과거의 어느 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릴수록, 그 뒤에 이어질 수 있었던 사건들을 다시 상상하게 되고, 두려움은 마치 지금 막 벌어지는 일처럼 몸을 긴장시킨다. 이미 끝난 사건임에도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한편으로, 결과가 이미 정해졌지만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할 때도 비슷한 감정이 발생한다. 예컨대 아이가 혼자 위험한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 실제 결과는 이미 과거에 결정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혹시 다친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 경우 두려움은 현재의 일이 아니라,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아직 확정되지 않았던 ‘그 다음 순간’을 향해 있다. 그래서 이 감정은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후회가 섞인 미묘한 형태로 나타난다.
과거를 두려워한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의 방향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앞으로 펼쳐질 가능성들을 향해 있다. 과거는 단지 그 출발점일 뿐이며, 두려움은 그 이후에 이어질 삶의 장면들을 미리 끌어와 우리를 긴장시키고 대비하게 만든다. 그래서 두려움은 언제나 미래를 바라보는 감정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 아니라, 그 일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성치훈 기자/ hello@sciencewave.kr
출처: Psyche, “When we fear the past we’re actually still looking a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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