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물은 태어나고 자라고 결국 죽는다.
질병이나 사고 없이 자연사한 인간 가운데 가장 오래 산 사람은 122세까지 생존한 프랑스의 한 여성(1875~1997)이며, 그 뒤를 잇는 기록은 119세까지 살았던 일본의 여성(1903~2022)이 보유하고 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인간의 최대 수명을 약 125세 전후로 추정한다.
장수 동물로는 그린란드상어(400년 이상), 북극고래(200년 이상), 코끼리거북(200년 이상), 북대서양 대합조개(500년 이상) 등이 알려져 있다. 이보다 더 오랜 시간을 살아온 생물로는 수심 깊은 바다에 서식하는 흑산호 중 4,000년 이상, 유리해면 중에는 무려 17,000년을 생존한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이들이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본다.
고래 대부분은 바다 수면 가까이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북극고래(bowhead whale)나 그린란드상어(Greenland shark)처럼 수백 년 이상 사는 종은 북극의 차가운 깊은 바다에서 긴 세월을 견뎌낸다. 과학자들은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을 통해 이들의 나이를 추정한다. 깊고 차가운 바다는 선박의 간섭이나 어업 활동이 적고, 수온이 낮아 대사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매우 적다. 북극고래는 초속 1m 이하로 느리게 헤엄치며, 그만큼 수명을 유지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산호의 나이, 어떻게 알까?
산호(coral)는 하등한 무척추동물로, 몸 밖에 탄산칼슘으로 된 단단한 외골격을 만들어 군체를 형성한다. 외관상 식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폴립(polyp)’이라는 개체가 나뭇가지처럼 자라난 외골격 표면에 다닥다닥 붙어 살아가는 군체성 동물이다. 산호는 성장하면서 외골격에 미세한 층을 형성하는데, 과학자들은 이 층을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예: ¹⁴C 연대측정)으로 조사해 나이를 추정한다.
흑산호(black coral)는 일반 산호보다 성장 속도가 느리고 외골격이 훨씬 단단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흑산호를 채취해 보석처럼 연마하여 장식품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연대 분석 결과, 일부 흑산호는 최대 4,000년 이상 생존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구 최장수 동물, 유리해면
해면동물(sea sponge)은 신경, 근육, 순환계, 소화기관 없이 살아가는 가장 원시적인 다세포 동물이다. 이들은 물을 체내로 흡수해 그 안의 유기물질을 걸러 먹는데, 이를 위해 몸 전체에 수많은 작은 구멍과 유입관을 갖고 있다. 해면동물은 이 구조 덕분에 ‘구멍이 많은 동물’이라는 뜻의 이름인 포리페라(Phylum Porifera)로 분류된다.
그중에서도 ‘유리해면(glass sponge)’은 규산질(silica, 유리의 주성분)로 된 가느다란 골편(spicules)을 체내에 뼈대처럼 형성하는 해면 종류다. 가장 유명한 종인 모노르하피스 추니(Monorhaphis chuni)는 하나의 실처럼 생긴 거대한 골편(길이 최대 3m)을 1년에 0.2mm 정도 자라게 하며, 이 골편이 마치 나이테처럼 생애 전체를 기록한다.

폴란드 과학아카데미의 고생물학자 안제이 피세라(Andrzej Pisera) 박사는 2021년, 북극 인근 해저 450~900m 심해에서 살아온 모노르하피스 추니가 무려 17,000년 이상 생존해왔음을 밝혀냈다. 이 발견은 해양 생물 중 가장 오래 살아온 생명체의 기록이다.
왜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을까?
유리해면이 서식하는 북극 심해는 수온이 0도에 가까울 정도로 낮고, 수백 미터 깊이의 해수층에는 파도나 해류가 거의 미치지 않는다. 이처럼 고정된 위치에서 움직임이 없고, 외부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환경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면서 생존을 지속하는 데 유리하다. 또한 이 지역에는 포식자도 거의 없어, 수천 년 동안 생장을 방해받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피세라 박사는 유리해면의 정확한 발견 위치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멸종 위기 생물이나 희귀 자원이 발견됐을 때, 불법 채취나 밀반출을 막기 위해 위치 정보를 밝히지 않는 것은 국제 과학계의 보편적인 보존 원칙이다.

[이미지=Midjourney 생성 이미지]
느린 대사와 자극 회피, 장수 생물의 공통 전략
많은 사람들은 100세를 넘게 사는 것보다,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 시절처럼 활기 있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의료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확실한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다. 다만 유리해면이나 장수하는 해양 생물들이 보여주는 생존 전략은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움직임을 줄이고,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며, 외부 자극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 생물들은 수천 년의 시간을 버텨낸다. 생물의 수명은 단순히 유전자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빠르게 살아가는지,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는지가 함께 작용한다.
수명을 늘리는 해답이 복잡한 개입이 아니라, 생리적 속도와 조건의 조율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장수 생물은 여전히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장수의 열쇠는 과격한 변화나 생물학적 개입이 아니라, 오히려 ‘느림’과 ‘절제’라는 가장 단순한 조건 속에 숨어 있는지 모른다.
수천 년을 살아가는 생물들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만을 유지하며 외부 자극을 차단하고, 장기적으로 신체 마모를 지연시키는 전략을 택해왔다. 복잡한 유전자 조작이나 인위적 개입 없이도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생명 전략이 실재한다는 사실은, 인간에게도 수명 연장의 본질이 기술이 아닌 생물학적 균형에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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