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직접 본 적 없는 공룡의 걸음과 달리기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오랫동안 티라노사우루스 렉스(T. rex)의 보행 속도는 시속 8km에 불과하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이 수치는 두 배 이상 높아진 시속 18km로 수정됐고, 더 나아가 최대 시속 40km까지 달렸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새로운 분석 결과가 2025년 6월 25일자 학술지 Biology Letters에 실린 것이다.
공룡의 걸음걸이를 짐작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단서는 발자국 화석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발자국은 공룡이 어떤 종이었는지, 어떤 땅을 걸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보폭으로 움직였는지를 알려준다.

영국 리즈대학의 동물학자 로버트 맥닐 알렉산더(1934~2016)는 이 분야의 개척자였다. 그는 어류의 유영과 포유류의 보행을 연구하며 동물 운동학을 개척했고, 1976년에는 ‘공룡의 속도 측정 공식’으로 불리는 수학 모델을 발표했다. 이 공식은 이후 수십 년 동안 공룡 속도를 추정하는 기준이 됐다.
하지만 발자국은 단단한 땅보다는 진흙 같은 연약한 지층에 남는다. 바로 이 점을 파고든 사람이 영국 리버풀 존무어스대학의 고생물학자 피터 팔킹햄 교수다. 그는 공룡과 가장 가까운 현생 동물로 꼽히는 아프리카 뿔닭(guinea fowl)을 대상으로, 실험실에 만든 인공 진흙탕 위를 걷고 뛰게 했다. 뿔닭이 남긴 발자국은 X레이 비디오로 촬영돼 보폭과 속도를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었다.

실험은 단순히 진흙 위를 걷게 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뿔닭이 멈추지 않고 달리도록 자극을 주어, 마치 쳇바퀴에서 쉬지 않고 달리는 다람쥐처럼 상황을 조성했다. 연구진은 같은 개체가 마른 땅과 진흙 위를 오갈 때 보행 속도와 보폭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했고, 그 수치를 알렉산더의 공식에 대입했다.
그 결과 티라노사우루스의 보행 속도는 기존 추정보다 크게 높아져, 성인이 달리는 속도와 비슷한 시속 20~40km로 산출됐다. 시속 40km는 숙련된 마라톤 선수가 내는 속도와 맞먹는다.
팔킹햄 교수는 그러나 논문에서 “공룡의 정확한 보행 속도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한 결코 확정할 수 없다”고 신중함을 덧붙였다. 연구는 추정치를 다듬고 범위를 좁히는 과정일 뿐, 그 자체가 최종 답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결국 공룡의 속도를 둘러싼 연구는 결국 수치 그 자체보다는, 우리가 과거 생명체를 어떻게 이해하려 하는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발자국 화석을 통해 수천만 년 전 동물의 움직임을 추정하는 작업은, 인간이 스스로의 기원과 자연 속 위치를 탐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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