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과학] 초콜릿의 매혹적인 향미는 미생물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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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웨이브

어릴 적 처음 먹은 초콜릿의 달콤함은 많은 사람들에게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나 다양한 초콜릿을 맛보다 보면, 똑같은 ‘초콜릿’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향과 질감, 여운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떤 제품은 과일의 산뜻함이 스치고, 어떤 것은 견과류처럼 고소하다. 오랫동안 이런 차이는 코코아 품종이나 원산지, 카카오 함량 때문에 생긴다고 이해돼 왔다. 하지만 최신 연구는 전혀 다른 답을 제시하고 있다. 초콜릿의 깊은 풍미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는 유전적 특성이 아니라 발효 과정에서 활동하는 미생물의 세계라는 것이다.

영국 노팅엄대학교 데이비드 고파울찬 연구팀은 2025년 Nature Microbiology에 발표한 연구에서 초콜릿 향미를 좌우하는 분자 조성의 대부분이 코코아콩 발효 과정에서 증식하는 야생 효모와 초산균의 대사 활동에 의해 생성된다고 밝혔다.

코코아콩은 수확 직후 과육에 싸인 채로 5~7일간 자연 발효된다. 이 동안 효모는 과육 속 당분을 분해해 에탄올과 방향족 화합물을 만들어내고, 이어 등장한 초산균은 이를 산화해 초산과 에스터 화합물을 형성한다. 이렇게 생산된 수백 종의 휘발성 향기 분자는 로스팅 단계에서 마이야르 반응을 거치며 초콜릿 특유의 복합적인 향미 구조로 재배열된다. 초콜릿 향미는 단일 물질이 아니라 발효 생화학과 열화학 반응이 중첩된 결과다.

열대 아메리카 지방이 원산인 코코아나무(Theobroma cacao, 카카오나무라 부르기도 함)는 키가 6-12m인 상록수이다. 오늘날 코코아나무는 열대지방의 여러 나라에서 재배하고 있으며, 최대 생산지는 서아프리카의 아이보리코스트(전체 생산량의 42.5%)와 가나(11.7%)이고, 그 외에 인도네시아, 에콰도르, 브라질 등에서 재배하고 있다. 코코아나무의 학명인 Theobroma는 그리스어로 ‘신의 음식’이라는 뜻이고, 현재 26종이 알려져 있다.

코코아나무의 가지에 1-2cm 크기의 작은 코코아꽃이 피었다. 꽃의 수정은 대부분 벌, 나비, 나방, 작은 파리 등이 해준다.

코코아 꼬투리 속에는 20-60개의 씨가 흰색의 펄프 속에 파묻혀 있다. 이 씨를 코코아콩 또는 카카오콩이라 부른다. 식용하는 초콜릿은 코코아콩을 일정 기간 발효시킨 다음, 솥에 넣어 볶은 뒤 분쇄한 가루를 주성분으로 하여, 여기에 우유, 설탕, 향료를 혼합하여 만든다. 카카오콩의 성분은 40-50%가 지방질이다. 이 지방질을 추출하여 코코아버터를 만들며, 코코아버터도 초콜릿 향미를 가졌다.

코코아 꼬투리를 수평으로 잘랐을 때의 모습이다. 갈색의 씨가 흰 섬유로 싸여 있다. 씨를 둘러싼 하얀 펄프는 대개 버리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이것을 발효시켜 주스나 젤리 또는 크림을 만들기도 한다.

코코아 씨를 열어본 모습이다. 왼쪽은 섬유질(pulp)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고, 오른쪽은 씨 내부의 떡잎(cotyledon)과 유배(embryo) 그리고 씨껍질(testa)을 보여준다.

코코아씨를 흰섬유가 붙은 상태로 발효시키고 있다. 발효 과정은 2단계로 이루어진다. 1차 발효는 큰 나무통 안에 담아 밀폐한 상태로 무산소(혐기성 발효) 조건에서 한다. 이때 섬유질에 이스트가 증식하여 섬유질 속의 당분을 알코올로 변화시킨다. 2차로 유산소(호기성 발효) 발효 과정을 거치면, 초산박테리아가 증식하여 알코올을 아세트산으로 변화시키는 동시에 씨 내부에 생화학적 반응이 일어나게 하여, 쓴맛이 줄어들고 코코아 특유의 향기를 가지게 된다.

연구팀은 32종의 박테리아와 22종의 효모를 분리해 조합 실험을 수행했고, 특정 미생물 군집에 따라 향미 프로파일이 뚜렷하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일부 효모 조합은 과일 향을 강화했고, 특정 초산균 조합은 카라멜과 견과류 계열의 향미를 키웠다. 이는 초콜릿 발효가 더 이상 ‘자연에 맡기는 과정’이 아니라 ‘설계 가능한 공정’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와인·치즈·커피 산업에서 발효 미생물의 선택과 조절이 품질을 결정하는 핵심인 것처럼, 초콜릿 산업 역시 미생물 기반의 정밀 발효 기술이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2차 발효 과정을 거치면 흰 섬유질은 모두 분해되어버리고 갈색의 씨만 남게 된다. 초콜릿이 가진 약간의 쓴맛은 테오브로마인(theobromine)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코코아 속에는 0.1-0.7%의 카페인도 포함되어 있다(커피 속에는 1.2%).

이 연구는 단순히 향을 개선하는 수준을 넘어 식품과 미생물 생태학 연구 전반에 중요한 관점을 제시한다. 미생물 군집을 해석하고 조절하는 기술은 향미 산업뿐 아니라 기능성 식품, 생물 소재, 의약학적 전달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초콜릿은 더 이상 ‘단맛의 사치품’이 아니라, 미생물 생태와 분자생물학, 화학 공정이 교차하는 복합 기술 산업의 결과물이다. 앞으로는 카카오 퍼센트나 산지보다 발효 균주 조합이 초콜릿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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