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학을 처음 접하는 이들은 염색체, 핵산(DNA·RNA), 유전자, 지놈, 염기서열, 유전자 지도와 같은 용어에 쉽게 혼란을 느낀다. 서로 긴밀히 연결된 개념들이 한꺼번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본 개념을 역사적 맥락과 어원에 따라 차근차근 살펴보면 이해가 한결 수월해진다. 이 글은 염색체에서 시작해 뉴클레오타이드와 핵산, DNA와 RNA, 지놈에 이르는 기초 개념들을 정리해본다.
염색체(chromosome)의 발견
세포 연구가 본격화된 것은 19세기 초다. 독일 화학자 발데이어(Heinrich Waldeyer, 1836~1921)는 현미경 관찰을 위해 세포를 다양한 색소로 염색했다. 1888년 그는 핵 속에서 유난히 진하게 물드는 입자를 확인하고, 그리스어에서 색을 뜻하는 크로마(chroma)와 몸을 뜻하는 소마(soma)를 합쳐 chromosome이라 명명했다. 이후 염색체가 부모로부터 자손에게 유전 형질을 전달하는 물질임이 밝혀졌다. 인간은 23쌍, 총 46개의 염색체를 가지며, 그 속에는 생명 현상을 조율하는 방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뉴클레오타이드와 핵산(nucleic acid)
유전물질의 정체를 밝히려는 연구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에까지 이어졌다. 독일 화학자 미셔(Friedrich Miescher, 1844~1895)는 1878년 염색체가 5탄당, 인산기, 질소 염기로 이루어진 단위들이 연결된 구조임을 밝혔고 이를 뉴클레오타이드라 불렀다. 뉴클레오타이드는 산성을 띠기 때문에 핵 속의 산성 물질, 즉 핵산이라 명명되었다. 따라서 두 용어는 사실상 같은 의미다.

핵산에는 DNA와 RNA 두 가지가 있다. DNA는 대부분 생물의 유전정보를 저장하고, RNA는 단백질 합성 과정에 관여하거나 일부 바이러스에서 유전물질로 기능한다. DNA에는 아데닌(A), 구아닌(G), 사이토신(C), 타이민(T) 네 가지 염기가 있으며, RNA에서는 타이민 대신 우라실(U)이 쓰인다.
지놈(genome)의 의미
DNA는 끝없이 긴 사슬 구조로, 그 안에는 유전자라 불리는 구간들이 존재한다. 유전자는 단백질 합성을 지시하는 역할을 하며, 나머지 구간은 흔히 불용 DNA라 불린다. 그러나 불용 DNA도 복제 안정성을 유지하는 등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염색체와 그 속의 유전자를 합쳐 과학자들은 지놈 또는 유전체라 부른다. 지놈은 한 생명체의 전체 유전정보를 뜻한다. 인간 지놈에는 약 30억 개의 염기쌍과 2만 5천여 개의 유전자가 포함된다.
지놈의 크기와 다양성
지놈의 크기와 유전자 수는 종마다 크게 다르다. 일본 특산식물 흰삿갓풀(Polaris japonica)은 지금까지 알려진 생물 가운데 가장 큰 지놈을 가지고 있다. 인간보다 50배나 큰 1,490억 개의 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포 하나의 DNA를 모두 펼치면 길이가 100m에 달한다. 반면 인간 DNA는 약 2m 길이에 불과하다.
또한 인간은 약 2만 5천 개의 유전자를 갖지만, 작은 물벼룩은 3만 3천 개의 유전자를 보유한다. 이는 염색체 수나 유전자 수가 단순히 진화 수준을 반영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여전히 과학이 풀어야 할 과제다.



유전학의 기본 개념은 처음에는 복잡하게 보이지만, 그 기원과 구조를 이해하면 맥락이 잡힌다. 염색체, DNA, 유전자, 지놈을 구분해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생명정보가 어떻게 저장되고 발현되며 다양성을 만들어내는지를 탐구하는 출발점이다. 그리고 지놈의 크기와 구성이 생물마다 왜 크게 다른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도 유전학과 진화 연구의 중요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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