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옥상, 고속도로 옆, 주차장 위. 태양광 패널이 세워진 자리는 해가 잘 드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에는 농지 위, 가축이 풀을 뜯는 들판 한가운데에도 전지판이 모습을 드러낸다. 벼 대신 패널이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은 다소 이질적이지만, 결코 우연은 아니다.
세계적으로는 에너지 전환과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노력 속에서 ‘애그리볼테익스(agrivoltaics)’라는 개념이 부상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기존 농지를 태양광 발전소로 활용하면서도 농업 생산을 지속하는 방식이다. 땅 위에서 전기와 식량을 함께 수확하겠다는 시도다.
‘애그리볼테익스’는 agriculture(농업)와 photovoltaics(태양광발전공학)를 합친 조어다. photovoltaics는 햇빛을 전기로 바꾸는 기술, 즉 광전변환공학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1980년대 독일의 물리학자 아돌프 괴츠베르거(Adolf Goetzberger)가 처음 제안했으며, 이후 사막지대, 초지, 건조지역 등에서 다양한 실험이 이어져 왔다.
최근에는 기후 변화 대응, 탄소중립 실현, 농촌 경제 회생이라는 현실적 과제를 동시에 풀어내는 전략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농업과 에너지의 공존 실험
표면적으로 보면 생산적이다. 태양광 발전소는 넓은 면적을 필요로 하지만 인류는 도시, 도로, 공장 등으로 이미 대부분의 평지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존 농지를 이중 활용하는 방식은 꽤 현실적인 대안처럼 보인다. 실제로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칠레 같은 나라에서는 방목지 위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해 가축은 그늘을 얻고, 인간은 전기를 얻는다. 꽤 공평한 거래처럼 들린다.
애그리볼테익스는 기후 위기 시대에 농업과 에너지 전환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복합적 해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진정한 해법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조건이 적지 않다.

그늘진 곳에서는 대부분의 식물이 제대로 생장하지 못하지만, 농작물이나 사료작물 중에는 태양전지판의 그늘 밑에서도 잘 자라는 종류가 있다. 태양전지판이 대지를 덮어 그늘을 지우고 있으면 토양 수분의 증발을 억제하고, 기온 상승을 감소하는 효과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태양전지판이 농업생산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
작물 위 태양광, 그늘이냐 방패냐
이 기술이 작동하려면 가장 먼저 묻게 되는 질문은 이것이다. 태양광 패널이 작물 생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패널이 햇빛을 차단하면 작물 생장이 더뎌지지는 않을까? 작물마다 요구하는 일조량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로 통하는 정답’은 없다.
벼, 밀, 옥수수처럼 강한 일조량을 요구하는 작물 위에 패널을 설치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반면, 상추나 시금치처럼 부분적인 그늘에서 오히려 잘 자라는 작물은 상대적으로 적합할 수 있다. 결국 애그리볼테익스는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재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기술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불편도 있다. 패널 설치로 인해 농기계 운용이 제약을 받을 수 있고, 농지의 경관과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유럽 일부 농촌에서는 패널이 농지의 공공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지역 사회의 반발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늘을 좋아하는 상추와는 달리, 주민들은 그늘에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형 애그리볼테익스, 어디까지 가능한가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 복잡하다. 산지가 많고, 태풍과 강풍이 잦은 지형 특성상 구조물의 안전성 문제가 수반된다. 또 영세 농가가 다수를 차지하는 구조 속에서 설치비용, 유지보수, 법적 규제 등의 부담을 농민이 감당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도 시도는 이뤄지고 있다. 2019년 청주를 중심으로 ‘한국영농태양광협회’가 설립되어 “농사와 태양광을 동시에”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관련 실증과 정책 제안을 이어가고 있다. 아직은 초보 단계지만, 방향성 자체는 세계적인 흐름과 맞닿아 있다.

땅 위에서 빛을 나누는 법
애그리볼테익스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땅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기도 하다. 농지는 전통적인 생산의 공간이면서도, 탄소중립이라는 새로운 시대 과제 속에서 재정의되고 있다. 햇빛 아래 세운 패널이 누구에게 그늘을 제공하는가를 따지는 일은, 결국 우리가 이 전환을 누구를 위해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빛은 충분하다. 문제는 그 빛을 누구와 어떻게 나눌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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