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과학] 식물이 숨기고 있는 비밀 – 식물의 회전 성장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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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웨이브

식물은 동물처럼 몸을 이동시키지 않는다. 뿌리를 내리고 한 자리에 고정되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지된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식물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식물은 생장 과정에서 환경 자극에 반응하며 방향을 바꾸고, 공간을 탐색하는 방식으로 운동한다.

줄기의 생장 선단부는 태양을 향해 자라는 굴광성(heliotropism)을 보이고, 뿌리는 중력 방향으로 자라는 굴지성(geotropism)을 따른다. 또한 미모사처럼 물리적 접촉이나 온도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식물도 있다. 이처럼 식물은 빛, 열, 중력 등 다양한 물리적 자극에 따라 생장 방향과 방식이 달라진다.

문제는 이러한 식물의 운동이 어떻게 조절되는지, 즉 감각에서 반응으로 이어지는 분자 수준의 기작이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식물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존재이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이 과학적으로 해명되지 않은 미지의 생명체이기도 하다.

회전성장: 식물의 느린 움직임

식물의 생장 운동 중 가장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는 회전성장(circumnutation)이다. 이는 줄기나 뿌리의 선단이 원형이나 나선형의 경로를 그리며 자라는 운동으로, 대부분의 식물에서 나타나며 특히 덩굴식물에서 두드러진다.

회전성장은 하루 중 낮과 밤, 생장 단계, 주변 환경 조건에 따라 속도와 방향이 달라진다. 나팔꽃, 호박, 칡, 오이, 포도나무와 같은 덩굴식물은 줄기의 끝부분이 천천히 회전하면서 자라다가 지지할 수 있는 구조물을 만나면 덩굴손(tendril)을 뻗어 감는다. 이 회전 운동은 맨눈으로는 관찰하기 어렵지만, 저속 촬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생장 패턴이 아니다. 세포의 분열 방향, 세포벽의 구조, 식물호르몬의 분포 등 복잡한 생리학적 요인이 조합되어 나타나는 정교한 현상이다. 특히 옥신(auxin)이라는 식물호르몬이 특정 방향으로 비대칭적으로 축적되면서 한쪽 면의 세포 신장을 촉진하고, 결과적으로 줄기나 덩굴이 굽거나 회전하게 된다.

씨앗이 발아하는 모습이다. 떡잎 사이에서 새눈(싹 bud)이 나오면 선단의 생장부(슈트)가 빠르게 세포분열을 하여 높이 성장한다. 그런데 이 선단생장부는 위를 향해 직선으로 자라지 않고 원형, 나선형, 지그재그를 커다랗게 그리면서 성장한다. 이런 회전성장은 거의 모든 식물이 하고 있으며, 특히 덩굴식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저속도 비디오로 포착한 해바라기(발아 3주 후) 선단생장부의 회전성장 상태를 보여준다.

지지체를 찾는 전략적 생장

회전성장은 식물이 주변 환경을 능동적으로 탐색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덩굴식물은 회전운동을 통해 지지체를 찾고, 접촉이 이루어지면 덩굴손이 빠르게 성장하며 지지체를 감는다. 이 과정은 물리적 접촉 자극이 세포 내 칼슘 이온 농도 변화를 유도하고, 특정 유전자 발현을 활성화하면서 이루어진다.

식물의 덩굴손이 시계 방향 또는 반시계 방향으로 감기는 방향성은 종마다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이는 성장 방향성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발현 패턴이 다르기 때문이다. 생장 기작은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정교하고 유전적으로 설계된 행동이다.

호박, 박, 오이 등의 덩굴성 식물의 선단생장부는 위쪽으로 계속 자라면서 회전성장을 하여 의지할 지주를 찾는다. 선단생장부가 이웃에 있는 식물의 가지와 접촉하면(때로는 자기 지신의 줄기와 접촉해도) 곧 가느다란 덩굴손(tendril)을 빠르게 생장시켜 코일처럼 지주를 휘감는다. 이때 실과 같은 덩굴손 역시 회전성장 방법으로 감는다. 덩굴손은 어떤 방법으로 코일 모습으로 자랄 수 있을까?

다윈이 시작한 회전성장 연구

식물의 회전성장은 찰스 다윈이 과학적으로 처음 기술한 운동이기도 하다. 그는 1880년 출간한 저서 『식물의 운동력(The Power of Movement in Plants)』에서 다양한 식물의 선단이 회전하며 자라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다윈은 식물의 움직임이 자극에 대한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능동적 전략일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1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회전성장이 정확히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한 분자생물학적 설명은 아직 불완전하다. 최근 연구들은 회전성장이 생체 시계(circadian rhythm), 세포골격의 재배열, 플라스모데스마를 통한 세포 간 신호 전달, 미세한 압력 수용기와 이온 채널의 작용과 관련되어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회전성장을 하여 지주를 감고 있는 3가지 덩굴식물의 줄기 모습이다. 회전성장은 식물의 종류에 따라 원형, 타원형, 원추형 또는 지그재그 형태로 나타난다.

호박의 줄기에서 자라나온 덩굴손이 지주를 단단히 휘감은 모습이다. 지주를 감는 방향은 식물 종류에 따라 시계방향인 것과 반대방향인 것이 있다. 애기장대와 같은 식물은 시계방향이고, 콩 종류는 시계 반대방향이다.

중력이 없어도 움직이는 식물

회전성장이 중력 반응인지, 또는 식물 자체에 내재된 운동 프로그램인지를 검증하기 위한 실험은 우주에서도 진행됐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벼와 나팔꽃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식물은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무중력 환경에서도 회전성장을 지속했다.

다만 회전의 범위는 줄었고, 방향성은 다소 불분명했다. 이 실험 결과는 회전성장이 중력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식물 내부의 자율적인 생리 메커니즘에 따라 조절된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회전성장은 자극 반응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식물이 스스로 방향을 찾고 조절하는 고유의 생장 전략일 수 있다.

식물의 줄기, 가지, 잎, 꽃, 뿌리가 사방으로 잘 펼쳐지도록 유도하는 원인과 생리적 변화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신비이다. 회전성장 현상은 온갖 식물의 뿌리가 사방으로 잘 펼쳐진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뿌리가 회전성장하는 목적은 빛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물과 영양분을 잘 섭취하도록 이루어진다. 중력은 어떻게 뿌리가 아래로 자라도록 유도할까?

나팔꽃에서는 코일 모양의 덩굴손이 따로 나오지 않고, 선단생장부 자체가 길게 자라면서 직접 지주를 빙빙 감는다. 회전성장 속도는 어린 시기에 가장 빠르고, 하루 중에서도 밤낮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들의 줄기와 잎은 그늘을 피하도록 계속 회전성장을 한다.

참으로 흥미로운 현상 하나는 나팔꽃 돌연변이 종 중에 선단생장부가 위로 자라지 않고 중력쪽(아래로)으로 자라는 것(E)이 있다. 이 나팔꽃의 줄기가 왜 뿌리처럼 중력 쪽으로 자라는지 그 이유 역시 미스테리이다.

가장 느리지만 정교한 생명 알고리즘

회전성장은 단순한 성장 방향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식물이 환경을 감지하고, 최적의 조건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작동시키는 정교한 생명 알고리즘이다.

빛, 중력, 접촉 자극, 온도 변화 등 다양한 신호를 조합해 방향을 설정하고, 그 방향으로 자라기 위해 세포 수준의 조절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 이런 점에서 식물은 감각 기관 없이도 감지하고, 판단하며, 조절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우리 눈에는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식물의 몸은, 실제로는 끊임없이 주변을 읽고 반응하고 있다. 그 느린 움직임 속에는 생명이 가진 방향성과 목적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그 움직임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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