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비타민 부족으로 병을 앓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식탁 위의 과일, 샐러드, 요거트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과 200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비타민 결핍으로 시력을 잃거나, 뼈가 휘고, 잇몸에서 피를 흘리며 고통 속에 살았다.
비타민은 인체가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미량 영양소로, 생명 활동의 보이지 않는 회로를 유지하는 핵심 요소다.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지는 않지만, 모든 효소 반응과 대사 과정의 조율자 역할을 한다. 이 작은 분자들이 없다면 단백질도, 지방도, 당질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결핍에서 시작된 발견의 역사
비타민이라는 이름은 1912년 폴란드 출신 화학자 카시미르 풍크(Casimir Funk)가 제안했다. 그는 미량의 유기물질 하나를 분리해내고, 이것이 ‘생명(vital)’에 필수적인 ‘아민(amine)’이라 하여 ‘vitamine’이라 불렀다. 이후 아민이 아닌 물질도 포함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철자 끝의 e가 빠져 오늘날의 ‘vitamin’으로 정착했다.
그러나 비타민의 존재는 훨씬 이전부터 경험적으로 알려져 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시력이 어두운 사람이 간을 먹으면 시력이 회복된다고 믿었다. 간에는 비타민 A가 풍부하다.

15세기 대항해 시대의 선원들은 장기간 채소와 과일 없이 항해하다가 괴혈병(scurvy)에 걸렸다. 잇몸에서 피가 나고, 상처가 아물지 않으며, 극심한 피로가 동반되는 병이었다. 1747년 스코틀랜드 의사 제임스 린드(James Lind)는 오렌지와 레몬이 증상을 완화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괴혈병의 원인이 비타민 C 결핍이라는 사실은 1920년이 되어서야 밝혀졌다.
비타민의 역사는 ‘결핍’에서 출발했다. 밤눈이 어두운 시력 장애, 휘어진 뼈, 피로와 빈혈, 신경 손상 등 — 이 모든 질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분자의 부재에서 비롯된 신호였다.
13종의 비타민, 인체의 정밀 조율자
현재까지 알려진 비타민은 13종이다. 비타민 A, C, D, E, K 다섯 가지와, 여덟 종류의 비타민 B군(B1, B2, B3, B5, B6, B7, B9, B12)이 그것이다. 이들은 세포의 대사를 미세하게 조정하며, 인체의 ‘생화학 오케스트라’를 조율한다.
비타민 B군은 특히 에너지 생산과 신경계 유지에 핵심적이다.
B1(티아민)은 포도당을 에너지로 바꾸는 효소의 조효소로 작용하며, 결핍 시 근육과 신경이 무력해진다.
B2(리보플라빈)과 B3(나이아신)는 미토콘드리아에서 지방과 단백질을 산화시켜 ATP를 생산한다.
B5(판토텐산)는 세포 내 아세틸-CoA 합성에, B6(피리독신)은 신경전달물질의 생합성에 관여한다.
B9(엽산)과 B12(코발아민)는 DNA 합성과 적혈구 생성에 필수적이며, B12는 특히 신경세포를 감싸는 미엘린을 보호한다. 이들 수용성 비타민은 물에 녹아 흡수되고, 남은 양은 소변으로 배출된다.

반면 비타민 A, D, E, K는 지용성으로, 지방과 함께 흡수되어 간이나 지방조직에 저장된다.
A는 시각을 담당하는 로돕신 단백질 합성에, D는 칼슘·인 대사 조절에, E는 세포막 산화 방지에, K는 혈액 응고 단백질의 활성화에 관여한다. 이들 비타민은 결핍보다 과잉이 더 위험할 수 있다.
비타민 A를 지나치게 섭취하면 간 독성이 생기고, D는 혈중 칼슘 농도를 높여 신장 결석을 유발할 수 있다.
인체는 대부분의 비타민을 합성하지 못하지만, 몇 가지 예외가 있다. 장내 세균은 비타민 K를 만들어 혈액 응고를 돕고, 피부는 햇빛을 받아 비타민 D를 합성한다. 이처럼 인체는 외부 환경, 미생물, 햇빛과의 정교한 공생을 통해 생화학적 균형을 유지한다.
선샤인 비타민(sunshine vitamin)’ 비타민 D
비타민 D는 ‘선샤인 비타민(sunshine vitamin)’으로 불린다. 햇빛을 받으면 피부에서 스스로 합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능은 단순히 뼈를 단단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비타민 D는 2,000여 개의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고, 면역세포의 활동을 조정하며, 세포의 성장과 분화를 통제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비타민 D 농도가 낮은 사람은 감염성 질환, 심혈관 질환, 일부 암의 발생 위험이 높다.
비타민 D 결핍은 구루병(rickets)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뼈가 약해지면서 척추가 굽고, 다리가 활처럼 휘며, 성장기 아이들의 뼈는 쉽게 부러진다. 성인에게는 골연화증이나 골다공증으로 이어진다. 오늘날엔 햇빛 부족이 새로운 형태의 결핍을 낳는다. 실내 생활, 자외선 차단제, 미용 목적의 과도한 차단 습관은 비타민 D 합성을 막는다.

비타민을 둘러싼 오해와 균형
균형 잡힌 식사를 유지한다면 비타민 결핍은 드물다. 곡물, 육류, 과일, 채소에는 대부분의 비타민이 충분히 들어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피로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보충제를 찾는다. 하지만 과잉 섭취가 건강을 개선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39만 명을 20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매일 종합비타민을 복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사망률은 차이가 없었다. 비타민은 부족하면 병을 일으키지만, 넘치면 그저 체외로 배출된다.
특히 지용성 비타민은 몸에 축적되어 간이나 신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비타민은 치료제가 아니라 생리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보조 요소다. 결국 건강을 지탱하는 것은 한 알의 보충제가 아니라, 규칙적인 식사와 빛, 그리고 몸의 리듬을 지키는 일이다.

Science Wave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1 thought on “[YS과학]세포를 움직이는 미세한 언어, 비타민의 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