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러-우레이 실험, 고전압 번개로 유기물 생성 입증
- 자레 교수팀, 물방울 충돌로 발생하는 미세 방전 실험 성공
- 반복적 저에너지 방전도 생명 전구체 형성 가능성 제시
생명의 기원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과학의 핵심 질문이다. 수십 가지 가설이 제시됐지만, 실험적으로 검증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지구가 물 한 방울 없이 뜨거운 마그마 덩어리였던 시기를 지나, 수억 년 후 바다를 품고 생명체를 잉태하기까지 이 거대한 시간의 간극 속에서 생명은 어떻게 시작됐는가?
1953년 밀러-우레이 실험은 이 질문에 대해 실험실 조건에서 유기물이 자연적으로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였다. 이 실험은 고전압 번개를 원시 대기 구성물질에 가해 아미노산을 생성하는 데 성공하며, ‘번개가 생명의 전구체를 만들었다’는 가설의 물증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보다 더 작고 일상적인 현상—물방울 간 충돌에서 생기는 미세한 방전이 생명 기원의 실마리일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이 제기됐다. 지난 14일, 미국 스탠퍼드대 자레(Richard Zare) 교수팀은 학술지 Science Advances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른바 ‘마이크로 번개’가 원시 지구 조건에서 유기물 생성을 유도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를 공개했다.
밀러-우레이 실험의 구조와 한계
밀러와 유레이는 메탄, 수소, 암모니아, 수증기를 혼합한 기체에 고전압 전기 방전을 가해 아미노산과 같은 유기물을 합성했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생명은 아니었지만, 생명의 분자적 출발점이 자연조건에서도 생성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 실험은 반복 재현이 가능했고, 이후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실험적 기초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실험이 가정한 에너지원—번개—가 실제로 어떤 조건에서, 어느 정도 규모로 작동했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실제 자연계에서 이 같은 전기 방전이 생명에 유리한 환경까지 전달됐을 것이라는 전제는 실험 외적 추론에 가깝다.

자레 교수팀의 문제 재정의: 작고 흔한 에너지
스탠퍼드대학의 리처드 자레 교수는 이 통념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강력한 에너지가 아니라, 약하고 흔한 에너지는 어떤가?”
자레 교수팀은 실험을 단순화했다. 물을 스프레이 방식으로 분사하고, 이 물방울이 공기 중에서 충돌하도록 했다. 충돌한 물방울은 크기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전하를 띠고, 이 과정에서 맨눈에 보이지 않는 방전이 발생한다. 이른바 마이크로 번개다.
이 방전은 기존의 번개와는 에너지 차원이 다르다. 수십만 볼트 대신 수 볼트~수백 볼트 수준이지만, 반복성과 공간적 광범위성에서 차별점이 있다. 폭포, 해안, 심지어 증기 방출 환경에서도 이 같은 미세 방전은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실험 결과, 이 조건에서도 아미노산, 엽록소 유사체, 간단한 펩타이드 전구체 등 유기물이 생성되는 것이 확인됐다. 실험은 2025년 3월, 학술지 Science Advances에 게재되었다.
생명 기원의 새로운 에너지 모형
이 실험은 에너지의 세기(intensity)가 아니라, 에너지의 총량(exposure frequency × duration)이 생명 기원에 더 결정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생명은 강력한 충격의 결과물이 아니라, 약한 반복의 누적 효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세 방전은 물리적 특성상 특정 지점에 집중되지 않으며, 장기간 노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더욱이 이 가설은 지구 외 생명 가능성 연구에도 적용 가능하다. 미세 방전이 가능한 환경—예를 들어 얼음과 증기, 기체 성분이 공존하는 유로파나 엔셀라두스—는 태양계 내외에서도 존재한다. 이는 생명의 ‘최소 조건’에 대한 정의를 물리적으로 재정립할 여지를 제공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다
마이크로 번개 실험은 생명체 자체를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생명체를 구성하는 분자 단위를 인위적 고압 방전 없이, 단지 물방울 충돌이라는 기초 현상으로도 생성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그 자체로 생명 기원 이론의 패러다임을 확장한다.
이 실험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단순하다. 생명의 출발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는 것. 물리적 세계의 흔한 상호작용도, 충분히 오래 지속되면 화학적 질서를 만든다. 생명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면, 생명의 출현 조건도 그렇게 특별할 필요는 없다.
생명은 일상적 현상의 부산물이었는가?
정전기는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특정한 장비 없이도, 옷을 벗을 때, 문고리를 잡을 때 우리는 방전을 경험한다. 그 에너지 수준은 낮지만, 자주, 그리고 넓게 발생한다.
만약 생명의 기원이 이처럼 작은 방전에서 시작됐다면, 생명은 희귀한 사건이 아니다. 생명은 확률이 아니라 통계의 문제다.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이 있다면, 충분한 시간과 반복을 통해 언젠가는 반드시 발생한다.
결국 질문은 생명이 어떻게 가능한가가 아니라, 왜 이토록 흔한 조건 속에서 아직도 드물게만 발견되는가로 이동한다. 이 질문은 아직 답이 없지만, 그 방향은 분명하다. 생명의 기원은 더 이상 신비가 아니라, 데이터와 구조의 문제다.
참고 문헌: Y. Meng et. al. Spraying of water microdroplets forms luminescence and causes chemical reactions in surrounding gas. Science Advances. Vol. 11, March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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