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과학] 바다의 아래, 또 다른 세계… 벤틱 존과 펠라직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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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웨이브

사람들은 바다에 들어가면 수면 위의 풍경만 기억한다. 햇빛이 반짝이는 물결, 헤엄치는 물고기, 파도 아래로 사라지는 발. 그러나 그 발밑 수십 미터, 수백 미터, 수천 미터 아래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다.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생명은 조용히 살아간다. 그 공간의 이름은 벤틱 존이다.

환경학에서 벤틱 존(benthic zone)은 강, 호수, 바다의 바닥을 뜻한다. benthic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benthos, 즉 ‘심해의 바닥’에서 유래했다. 반대로 수초가 자라고 물고기와 고래가 헤엄치는 물기둥 전체는 펠라직 존(pelagic zone, 해수대)이라 부른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바다는 사실 펠라직 존의 일부에 불과하다.

절벽처럼 떨어지는 해저와 희미한 빛만 남은 심해. 인간의 시선이 거의 닿지 않은 펠라직 존 아래 세계가 펼쳐진다. [사진=midjourney 생성 이미지]

해저는 전부 벤틱 존

지구 표면의 71%는 바다와 호수, 강으로 덮여 있다. 이는 곧 지구 표면의 대부분이 벤틱 존이라는 의미다. 얕은 호수와 강, 늪지, 개천의 바닥에는 햇빛이 도달해 수생식물과 다양한 동물이 산다. 이런 지역은 인간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생태계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수심이 깊어질수록 이야기는 달라진다. 햇빛이 닿지 않는 깊은 벤틱 존은 완전한 암흑이며, 수압은 인간이 견딜 수 없는 수준으로 높아진다. 오랫동안 이런 공간은 생명이 살기 어려운 곳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구에서 가장 깊은 해저에도 미생물과 특수한 생물들이 살아간다.

바다의 물기둥, 즉 펠라직 존은 수심에 따라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벤틱 존과 필래직 존을 나타낸다. 필래직 존은 깊이에 따라 즉 200m, 1,000m, 4,000m, 6,000m, 10,000m 이내 5단계로 구분한다.
continental shift: 대륙붕

🌊 표층해수대(epipelagic zone)는 수심 약 200m 이내의 해역이다. 태양빛이 충분히 도달하는 이곳에는 대부분의 해양 동식물이 모여 산다. 투광대 또는 광층대라고도 불리며, 깊은 해역보다 수온이 따뜻하다. 수면 위의 바람은 영양염을 고르게 섞어 환경을 안정시키고, 식물플랑크톤은 활발히 광합성을 한다. 인간이 소비하는 해산물의 상당수는 이 구역에서 생산된다.

🐙 중층해수대(mesopelagic zone)는 수심 200~1,000m의 해역이다. 태양빛은 거의 사라지고 희미한 잔광만 남는다. 수온은 급격히 낮아지고, 생물의 모습도 달라진다. 큰 눈을 가진 오징어와 문어, 희귀한 심해어가 이곳에 산다. 일부 어류는 몸에서 녹색이나 붉은빛을 내는 발광기관을 지녀 어둠 속에서 의사소통을 한다.

🌑 심해해수대(bathypelagic zone)는 수심 1,000~4,000m에 이르는 완전한 암흑의 세계다. 수온은 약 4℃로 비교적 일정하며, 수압은 극단적으로 높다. 수심이 10m 깊어질 때마다 수압은 약 1기압씩 증가해, 이 구역에서는 최대 400기압에 달한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발광생물이 발견되며, 빛은 생존을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된다.

바이퍼피시(viperfish)라 불리는 심해해수대에 사는 위 물고기는 몸에 다수의 발광기관이 있다.

🧊 심층해수대(abyssopelagic zone)는 수심 4,000~6,000m의 해역이다. 영양물질은 거의 없고 수온은 0℃에 가깝다. 발견되는 생명체는 극히 적지만, 이 구역은 바다 전체 면적의 약 83%를 차지한다. 이 해수대를 이루는 물은 오래전 북극과 남극에서 가라앉은 냉수로, 산소가 거의 없다.

심층해수대에서 발견된 해파리 종류이다. 사진 외에는 이 해파리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다.

⚫️ 초심층해수대(hadalpelagic zone)는 수심 6,000m 이하의 해역으로, 마리아나 해구와 같은 초심해 지역이 여기에 속한다. 수압은 상상을 초월하고 수온도 0℃ 부근이다. 그럼에도 생명은 존재한다. 이곳의 생물들은 해저로 떨어지는 유기물을 분해해 화학 에너지를 얻는다. 태양빛 없이도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깊은 벤틱 존의 생명체들은 무엇을 먹고 살까.

가장 깊은 곳에서도 신비스런 어류가 발견된다.

시체를 분해하여 에너지를 얻는 심해저의 생물

상층부 해역에서 사는 식물플랑크톤과 해조류, 물고기와 고래 등이 죽으면 그 사체는 결국 깊은 벤틱 존에 떨어져 쌓인다. 심해 벤틱 존에 사는 생명체들은 이 사체를 분해하며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다. 결국 이들은 벤틱 존을 청소하는 역할을 한다. 동식물의 사체가 분해되면 황화수소, 즉 달걀이 썩을 때 나는 냄새의 원인이 되는 물질이 발생한다. 많은 미생물은 이 황화수소에서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다.

태양빛이 닿는 표층에서 시작해 어둠으로 가라앉는 바다의 수직 구조. 펠라직 존은 깊이에 따라 전혀 다른 생명의 풍경을 만든다. [사진=midjourney 생성 이미지]

빛이 거의 닿지 않는 깊은 바다의 벤틱 존. 대륙사면을 따라 쌓인 미세한 퇴적물과 암반 표면에는 생물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는 태양 에너지 대신 해저로 가라앉은 유기물이 생태계를 지탱한다. [사진=midjourney 생성 이미지]

벤틱 존은 지형에 따라 모래가 깔린 곳도 있고, 산호가 무성하게 자라는 지역도 있으며, 암석지대나 갯벌로 덮인 곳도 있다. 벤틱 존의 생물들은 자신이 사는 환경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구분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벤틱 존의 표면에 사는 산호, 해면, 불가사리, 소라 등은 표서동물(epifauna)이라 하고, 모래나 갯벌 아래로 파고들어 사는 갯지렁이, 게, 조개 등은 내생동물(infauna)이라 한다. 또한 고압 조건에서 사는 생물은 호압성 생물(piezophiles)이라 하며, 특히 초고압이나 고열과 같은 극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생물은 극한생물(extremophiles)이라 부른다.

벤틱 존의 최상층부인 표층해수대보다 더 깊은 해역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이곳은 달과 화성의 표면보다도 더 낯설고,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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