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소비되는 작물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 식물이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인류의 주식 작물로 자리 잡았는지는 오랫동안 명확하지 않았다. 감자의 기원은 단순한 재배의 역사가 아니라, 수천만 년에 걸친 자연의 교잡과 이후 인간의 선택이 겹쳐 형성된 진화의 과정이다.
감자와 토마토, 가장 가까운 친척
오늘날 재배되는 감자의 학명은 감자(Solanum tuberosum)다. 토마토의 학명인 토마토(Solanum lycopersicum)와 비교하면, 두 식물이 같은 가지과에 속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속 이름이 같다는 사실은 두 식물이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운 관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분자계통 분석과 유전체 연구에서도 감자와 토마토는 공통된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종으로 분류된다.
형태는 분명히 다르다. 감자는 지하로 뻗은 줄기의 일부가 비대해져 전분을 저장하는 괴경을 형성한다. 이 구조는 흔히 뿌리로 오해되지만, 식물학적으로는 줄기의 변형된 형태다. 반면 토마토는 지상 줄기에서 꽃을 피우고 즙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한 결과일 뿐, 진화의 출발점 자체가 크게 달랐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 최근 연구의 공통된 해석이다.


포마토 실험이 보여준 유전적 경계
이 같은 근연성은 과학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다. 19세기 유럽에서는 감자 줄기에 토마토를 접붙여, 땅속에서는 감자가 자라고 줄기에서는 토마토가 열리는 식물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접목된 개체는 겉보기에는 두 작물을 동시에 생산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명확한 한계를 드러냈다. 감자와 토마토는 염색체 수와 구조가 달라, 접붙인 식물에서 얻은 씨나 괴경으로 동일한 형태를 다시 재현할 수 없었다. 1970년대에 시도된 교배 실험도 결과는 비슷했다. 두 식물을 직접 교배해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실은 부실했고 종자는 대부분 생식 능력을 갖지 못했다. 이는 감자와 토마토가 가까운 친척임에도 불구하고, 종 사이의 유전적 경계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13년에는 영국의 한 농장에서 포테이토에 토마토를 접붙여 작은 감자와 토마토가 열린 식물체를 키워 톰타토(TomTato)라는 상품명으로 팔기도 했다. 그러나 톰타토의 인기는 곧 사라졌다.

감자의 시작은 자연 교잡이었다
감자의 진화는 인간의 손이 닿기 훨씬 이전, 자연에서 시작됐다. 과학자들은 약 900만 년 전 토마토의 조상과 감자의 조상 사이에 자연적인 교잡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계통이 형성됐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지하 줄기가 저장 기관으로 발달하는 특징이 나타났고, 이는 감자가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이후 감자의 조상은 오랜 시간 야생 상태로 분화하며 다양한 형태로 퍼져 나갔다. 안데스산맥 일대의 복잡한 기후와 지형은 감자의 유전적 다양성을 키우는 환경으로 작용했다.
안데스에서 시작된 재배의 역사
인류는 약 7천~1만 년 전부터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 지역에서 감자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은 고도가 높고 기온이 낮으며, 기후 변동이 심하다. 감자는 이런 조건에 적응하며 수많은 야생종으로 분화했다.
현재 안데스 전역에서 발견된 야생 감자는 180여 종에 이른다. 대부분은 쓰거나 독성을 띠지만, 이 가운데 일부는 식용이 가능했다. 원주민들은 이런 감자를 선택적으로 재배하며 독성을 줄이고 저장성과 생산성이 높은 품종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선택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유럽으로 건너간 감자, 주식 작물이 되다
16세기 중반, 스페인을 통해 감자가 유럽에 전해졌다. 감자는 곧 추운 기후에서도 안정적으로 자란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특히 곡물 재배가 어려운 지역에서 감자는 빠르게 확산되며 중요한 식량원이 됐다.
이후 농업인들은 수확량이 많고 맛이 좋으며 병해에 강한 품종을 반복적으로 선별했다. 지난 300여 년 동안 육성된 재배종은 5천 종이 넘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 가지 문제가 누적됐다. 감자는 씨앗이 아닌 괴경을 심어 증식하는 무성생식 작물이기 때문에, 품질은 안정적이지만 유전적 다양성은 점차 줄어들었다.
이 한계는 19세기 아일랜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감자에 크게 의존하던 아일랜드 사회는 마름병이 퍼지자 급속히 붕괴됐다. 1845년부터 시작된 감자 흉년으로 약 100만 명이 굶어 죽었고, 또 다른 100만 명 이상이 해외로 이주했다. 단일 품종 중심의 농업이 환경 변화와 병해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다시 야생 감자로 돌아가는 이유
오늘날 과학자들이 다시 야생 감자에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후변화와 새로운 병해가 동시에 진행되는 환경에서, 기존 품종만으로는 식량 생산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야생 감자들은 가뭄과 저온, 병원균에 적응하며 살아남은 유전적 특성을 품고 있다.
현대 유전체 분석은 감자의 기원이 자연 교잡이라는 사실을 분자 수준에서 확인했고, 동시에 야생 감자에 남아 있는 유전적 자원이 미래 육종의 핵심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감자는 우연히 탄생한 작물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 온 식물이다. 그리고 지금, 그 진화의 유연성이 다시 한 번 인류의 식량 문제 앞에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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