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는 매일 평균 5시간 이상 바다 속에서 생활하는 ‘해녀’들이 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이 여성 잠수부들은 11살 무렵부터 물질을 배우기 시작해 약 7년간 훈련을 거친 후 정식 해녀가 된다. 2025년 현재 제주 해녀 가운데 최고령자는 80세를 넘었고, 전체의 90%가 60세 이상이며 평균 연령은 70세에 달한다.
2025년 8월 18일자 학술지 <Current Biology>에는 스코틀랜드 해양동물학자 크리스 맥나이트(Chris McKnight) 박사 연구팀이 제주에서 7명의 해녀와 생활하며 의학적 생리를 분석한 연구가 실렸다.
물질과 잠수 생리 조사
해녀들이 보조 호흡기 없이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작업을 ‘물질’이라 한다. 맥나이트 교수팀은 7명의 해녀를 대상으로 총 1,786회의 잠수 데이터를 수집했다. 해녀들의 몸에는 SMRU(Sea Mammal Research Unit) 장치와 여러 생리 측정기를 부착해 잠수 깊이, 체류 시간, 수면에서의 회복 시간, 뇌와 근육의 산소 농도, 호흡수, 맥박, 혈압 변화를 기록했다. 일부 조사는 연구를 위해 마련된 실험 환경에서도 진행됐다.
해녀들은 하루 2~10시간 물질을 했으며, 그중 56%의 시간을 실제로 물속에서 보냈다. 이는 일부 수생 포유동물보다 더 긴 수중 활동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수생 포유동물에는 고래, 물범, 바다사자, 듀공, 수달, 비버, 북극곰, 하마 등이 있다.

역사와 해녀 문화
제주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잠수의 역사는 최소 3,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에는 남성이 바다에 들어가 전복이나 소라 같은 해산물을 채취했으나, 17세기 이후부터는 점차 여성의 역할로 전환되었다. 18세기에 들어서는 여성 잠수부의 수가 남성을 앞지르며 ‘해녀’라는 명칭이 자리 잡았다.
그 배경에는 전쟁과 해난 사고로 남성 인구가 크게 줄어든 사회적 요인이 작용했다. 조선 시대 병역 부담과 잦은 원정, 선박 침몰과 같은 해상 사고로 인해 남성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여성들이 바다로 나서게 된 것이다. 여성이 차가운 물에 상대적으로 잘 적응한다는 생리적 특성도 이런 변화를 뒷받침했다. 실제로 체지방 분포와 체온 유지 능력에서 여성이 더 유리하다는 점이 알려져 있다.
이후 해녀들은 제주 경제와 공동체 생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어촌계와 같은 공동 조직을 중심으로 조업 일정을 조율하고, 소득을 나누는 협동적 구조가 형성됐다. 해녀들은 단순히 해산물을 채취하는 노동자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의 경제적 자립과 생활 기반을 지탱하는 주체였다.

해녀 문화는 또한 독특한 의례와 전통을 낳았다. 물질에 나서기 전 바다의 신에게 무사와 풍요를 기원하는 ‘해녀굿’, 공동체 내 규율을 지키기 위한 어촌계 규약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단순한 생업을 넘어선 문화적 정체성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해녀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돼, 단순한 직업 집단을 넘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해양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젊은 세대의 진입이 줄어들면서, 현재 활동하는 해녀 대부분은 고령층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 독특한 문화가 소멸 위기에 놓여 있다.
Journal:J.C.McKnight et al. Diving behavior and physiology of the Korean Haenyeo. Current Biology. Vol. 35, August 18, 2025
예상과 다른 생리 반응
연구팀은 해녀들이 잠수할 때 호흡을 멈추므로 산소 농도가 떨어지고 심박수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수생 포유동물에서 관찰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달랐다. 해녀들이 잠수하면 심박수가 오히려 증가했고, 뇌와 근육의 산소 수준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해녀들의 잠수가 평균 11초로 매우 짧고, 길어도 30초를 넘지 않으며, 깊이는 1~3m(최대 10m)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또한 수면 위에서 쉬는 시간도 평균 7초에 그쳤다. 일반인들의 예상과 달리 해녀들은 깊고 긴 잠수 대신, 짧고 얕은 잠수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구팀이 확인한 또 다른 특징은 혈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져도 해녀들이 불편을 거의 느끼지 않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심한 고통을 유발하지만, 해녀들은 이를 잘 견뎠다.



인어의 기억과 마지막 세대
동서양에는 ‘인어(人魚, mermaid)’라는 표현이 있다. 일부 학자들은 과거 맨몸으로 잠수하던 제주 해녀들이 인어 전설의 기원이 되었을 가능성을 언급한다. 고무 잠수복이 없던 시절, 맨몸이 오히려 잠수하기에 더 적합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제주 해녀들의 평균 연령은 70세에 이른다.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 활동하는 해녀들 중에는 임신 중에도 물질을 하고, 출산 당일에도 바다에 나갔던 경험을 가진 이들이 있다. 맥나이트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수생 포유동물처럼 물속 생활을 이어온 ‘마지막 세대 해녀’들의 생리를 과학적으로 기록한 귀중한 성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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