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천문대의 반사망원경보다도 성능이 월등한, 천문학 발전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베라 루빈 천문대(Vera Rubin Observatory)가 칠레 케로 파촌(Cerro Pachón)의 엘 페뇽(El Peñón) 산 정상에 완공되었다. 구경 8.4m의 반사경을 갖춘 이 망원경을 혁명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이유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초정밀 디지털카메라를 탑재한 반사망원경이기 때문이다.
칠레 중부 안데스산맥의 태평양 인근, 해발 2,682m의 엘 페뇽 산 정상에서는 2014년부터 ‘LSST(Large Synoptic Survey Telescope)’로 불리던 세계적 규모의 천문대 건설이 진행되어 왔다. 이후 2019년, 이 천문대는 미국의 여성 천문학자 베라 플로렌스 쿠퍼 루빈(Vera Florence Cooper Rubin, 1928~2016)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베라 루빈 천문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루빈 천문대의 디지털카메라는 정밀도 면에서 그 어떤 천문대의 장비와도 비교할 수 없다.
일반 디지털카메라의 해상도는 약 2,400만 화소, 최고급 기종은 2억4천만 화소에 이른다. 스마트폰 카메라 역시 5천만 화소에서 최고 1억 화소(2025년 기준) 수준이다.
이에 비해 루빈 천문대의 디지털카메라는 무려 32억 화소로 설계되어, 단 한 장의 사진으로도 달 표면 전체를 초정밀로 포착할 수 있다.
루빈 망원경의 성능
가장 광대하고 깊은 우주에서는 천체의 변화가 매우 느리게 일어난다.
은하의 이동이나 우주의 팽창 같은 현상은 인간의 시간 감각으로는 거의 정지된 것처럼 보인다.
루빈 천문대의 초정밀 망원경은 이러한 느린 우주의 흐름을 세계에서 가장 자주, 가장 세밀하게 관측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이 망원경은 동시에, 우주에서 가장 빠르게 일어나는 현상들—예를 들어 별의 폭발(초신성), 변광성의 밝기 변화, 새롭게 접근하는 혜성—을 그 누구보다 먼저 포착할 수 있다.
즉, 루빈 천문대는 느리게 진화하는 우주와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우주의 사건들을 모두 기록할 수 있는 유례없는 관측 장비다.
루빈 천문대의 망원경에는 최고 성능의 CCD(Charge-Coupled Device) 디지털카메라가 장착되어 있다.
이 카메라는 빛(광자)을 전기신호로 변환해 이미지를 생성하며, 특히 암흑물질 관측에 최적화되어 있다.
이 장비의 설계를 주도한 이는 캘리포니아 대학의 천문학자 앤서니 타이슨(Anthony Tyson)과 그의 연구팀으로, 타이슨은 이 망원경을 ‘암흑물질 망원경’이라 부르기도 했다.




cosmic light source: 우주 광원, Secondary mirror: 2차 반사경(직경 3.5m), Primary mirror: 1차 반사경(주경 직경 8.4m), Tertiary mirror: 3차 반사경(직경 5m), Lenses: 집속 렌즈, Toward the CCDs array: CCDs로 가는 광선

루빈 천문대의 네 가지 주요 과학 목적
🌌 200억 개 은하의 관측과 추적
루빈 천문대는 약 200억 개의 은하를 지속적으로 추적할 예정이다. 또한 전체 우주에서 약 7×10²³개의 별 중 우리 은하계 내 600만 개, 전체 은하계에서 약 170억 개의 별을 장기 관측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암흑물질이 집중된 10여 곳도 함께 탐색된다.
🪐 소행성의 대량 발견과 추적
현재까지 태양계에서 발견된 소행성은 2만5천 개 이상이며, 직경 100km 이상은 약 230개다. 루빈 천문대는 500만 개 이상의 소행성을 발견해 지속적으로 추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약 10만 개는 지구 근처를 지나는 근지구 소행성일 것이다.

🌑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탐색
루빈 망원경은 인류가 보유한 가장 정밀한 우주 지도를 새로 작성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분포를 규명하려 한다. 우주 물질의 약 80%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은 직접 보이지 않지만, 다른 천체에 중력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루빈 망원경은 이 중력 효과를 전례 없이 세밀하게 검증하게 될 것이다.
🌠 우주의 변화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추적
매일 밤 하늘 전체를 광각으로 촬영하는 루빈 망원경은 변광성의 밝기 변화, 초신성의 폭발과 진화, 새로 접근하는 혜성 등을 세계 그 어떤 망원경보다 먼저 포착하게 될 것이다. 루빈 천문대는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우주의 순간을 기록하는 ‘하늘의 타임랩스’가 될 전망이다.
별과 위성을 구분하는 눈, 루빈 천문대의 첫 성과
루빈 망원경은 333초간의 시험 촬영에서 스타링크 위성 궤적을 최소 19개 이상 포착했다. 영상에는 이 궤적들이 가느다란 흰 선으로 나타난다. 현재 약 7,000기의 스타링크 위성이 저궤도에 운용 중이며, 총 3만4,000기 이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러한 초대형 위성 군집은 지상 망원경의 영상에 인공적인 선형 흔적을 남겨 관측을 방해할 수 있다. 루빈 천문대는 초광각 시야와 초고해상도 관측 능력을 활용해 위성의 위치와 밝기 변화를 실시간에 가깝게 추적함으로써, 노출 계획을 조정하거나 촬영 후 데이터에서 인공신호를 제거하는 보정 작업까지 수행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루빈 천문대는 우주를 단순히 관측하는 장비를 넘어 인공위성으로 인해 왜곡된 하늘을 복원하는 정밀 감시 장치이기도 하다.
짧은 시험 운용만으로도 루빈 천문대는 1,000만 개 이상의 새로운 은하와 2,000개 이상의 소행성을 식별했다. 이는 기존 천체 카탈로그에 없던 천체들을 실제로 검출했다는 의미다. 소행성의 경우 궤도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적할 수 있어, 지구 접근 소행성의 위협을 평가하는 행성방어(planetary defense) 연구에도 활용된다. 반면 은하 데이터는 암흑물질의 분포와 암흑에너지에 따른 우주 팽창 구조를 이해하는 데 쓰인다. 루빈 천문대는 이렇게 태양계 규모부터 우주 거대구조까지 하나의 장비로 아우르는 관측 범위를 확보했다.
루빈 천문대(NSF–DOE Vera C. Rubin Observatory)가 수집한 데이터는 폐쇄적인 형태로 관리되지 않고, 전 세계 천문학자와 시민 연구자들에게 단계적으로 개방될 예정이다. 변광성이나 초신성처럼 시간에 따라 밝기가 달라지는 천체는 인간의 시각적 비교·분류 과정에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루빈 천문대는 이런 분석 과정을 대중에게도 열어, 우주의 급변하는 사건을 함께 탐색하는 참여형 관측 체계를 구축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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