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 비대와 전이의 역설적 관계 규명
암세포의 핵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현상은 오래전부터 병리학적 특징으로 꼽혀 왔다. 그동안은 암세포가 진화 과정에서 얻은 공격적 형질로 해석됐지만, 이번에 KAIST 연구팀은 정반대의 결과를 내놨다. 핵이 커질수록 오히려 암세포의 이동성과 전이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병리학 교과서 속 오래된 의문이 풀리면서, 암 진단과 예후 평가에 새로운 지표가 될 가능성이 열렸다.
DNA 복제 스트레스가 불러온 핵 비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의과학대학원 김준 교수 연구팀은 김지훈·김유미 교수 연구팀과 함께 암세포 핵 비대의 분자적 원인을 추적했다. 연구진은 암세포에서 흔히 발생하는 DNA 복제 스트레스(DNA replication stress)에 주목했다. 이는 세포가 DNA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오류나 부담이 누적되는 현상으로, 암세포의 불안정한 유전체 환경에서 자주 발생한다.

[사진 제공=KAIST]
분석 결과, DNA 복제 스트레스는 핵 내부의 액틴(actin) 단백질을 뭉치게 만들어 핵 구조를 불안정하게 하고, 그 결과 핵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유전자 기능 스크리닝, 전사체 분석(RNA-seq), 3차원 유전체 구조 분석(Hi-C)을 통해 단순한 크기 확대가 아니라 DNA의 접힘 구조와 유전자 배열 자체가 바뀌는 현상이 동반된다는 점을 밝혀냈다.
전이 능력 억제 확인
핵이 커진 암세포는 전이와 관련된 유전자 발현이 억제됐으며, 실제로 생쥐 이식 모델에서도 세포의 이동성과 전이 빈도가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핵 비대가 암 확산을 돕는다는 기존 가정과 달리, 복제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임시적이고 소모적인 반응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준 교수는 “DNA 복제 스트레스가 핵 크기의 균형을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확인해 병리학 교과서에서 오랫동안 미해결로 남아 있던 의문을 풀었다”며 “핵 구조 변화가 암 진단과 전이 예측에 활용될 새로운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진단과 치료 전략으로의 확장 가능성
이번 연구는 병리학적 관찰에 머물던 암세포 핵 비대 현상을 분자적 기전으로 해석한 최초 사례다. 연구진은 핵 구조 변화가 암 전이 위험을 평가하는 새로운 진단 기준이 될 수 있으며, 나아가 전이 억제 기전을 겨냥한 치료 전략 개발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성과는 KAIST 의과학대학원 김창곤 박사와 홍세명 박사과정생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온라인판에 2025년 9월 게재됐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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